영화 서적 "붐"|창작·번역서 몇 달 새 10여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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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영화서적이 활발히 출간되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영화서적들은 창작·번역서를 합쳐 이미 10여종을 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영화를 1회용의 대중오락으로 보는 관점에서 탈피해 보다 진지한 접근을 시도하는 최근의 지적 동향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환영받고 있다. 이는 다시 말하면 영화를 이해하기 위해 구태여 책까지 볼 필요가 있겠느냐는 식의 생각이 이제는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영화서적들의 양적 풍요에도 불구하고 이 책들이 독자들의 영화에 대한 고조되는 관심을 얼마나 충족시키고있느냐에 대해서는 반드시 긍정적인 결론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이들 영화 비평서들은 대부분 단편형식의 글들을 모은 것들이기 때문에 영화에 대한 체계적이고 깊이 있는 분석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나온 책들을 살펴보면 우선 소설가로 잘 알려져 있는 이제하씨의 『이제하의 시네마 천국』의 눈길을 끈다. 이 책은 그동안 저자가 영화·비디오에 관해 신문·잡지 등에 기고했던 글들을 모은 것이다.
『영화라는 형식이 한 개인에게 미치는 보편적인 감정의 파고와 거기 따르는 상념들의 굴절을 살피기』위해 쓰여졌다고 저자가 밝히고 있는 대로 소설가다운 섬세한 감수성으로 영하를 이해하고 있는 책이다.
박흥진씨의 『시네마, 시네마의 세계』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오랫동안 신문기자로 거주하고 있는 저자가 현장에서 지켜 본 할리우드 영화를 기록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알기 어려운 할리우드의 이면이 흥미롭게 묘사되고 있는 책이다.
장세진씨의 『우리 영화 좀 봅시다』는 특이하게 한국영화에 대한 평만을 모은 책이어서 눈길을 끈다. 『국수주의적인 한국영화 사랑이 필요하다』는 저자의 주장대로 대부분의 관객들도 외면한 한국영화까지 꼼꼼히 평하고 있는 성실한 자세가 돋보이는 책이다.
이 책들은 저자들의 영화에 대한 깊은 애정과 개성적인 문체가 어우러져 충분히 독자들을 끌어들일 만한 매력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체계가 부족하고 분석적이지 못하다는 한계를 공통적으로 안고 있다.
이 책들의 이러한 단점은 저널리즘 영화비평만 비대하게 발달한 우리 영화계의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다.
아카데미 비평 내지 분석비평이 빈곤한 나쁜 전통은 그 동안 영화를 지적·문화적 분석의 대상으로 보지 않았던 고루한 인식에서 연유한 것이긴 하지만 이제는 저널리즘 비평과 아카데미 비평간의 균형을 맞추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짧은 지면에 영화의 핵심의 잘 짚어내는 것을 본령으로 삼는 저널리즘 비평이 나름대로의 장점을 가지고 있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뛰어난 비평이라도 결국은 시한성의 글이 될 수밖에 없는 저널리즘의 성격상 깊이 있는 비평이 되기 어렵다는 한계는 명확히. 인식해야하는 것이다. 영화수입 자유화 이후 다양한 영화체험을 통해 날로 높아지는 관객들의 영화에 대한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켜주기에는 저널리즘비평으로는 역부족이라는 것.
한 영하연구가는 『아카데미 비평이 이렇게 부진한 것은 근본적으로 영화학자들의 노력 부족이 큰 원인』이라고 자생론을 제기하면서 『좋은 아카데미 비평은 정교한 분석을 앞세운다는 점에서 막연한 인상기에 그치기 쉬운 저널리즘 비평보다 영화제작에도 기여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임재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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