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거일·하재봉의 「미래소설」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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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소설의 새로움이란 그 소설을 태어나게 하고 그것을 조건짓는 삶과 사회 자체의 끊임없는 변화와 그 불확실성에서 기인한다. 판에 박힌 형식이나 똑같은 이야기로는 도저치 말할 수 없고 설명할 수 없는 개인과 현실이 존재하는 한 그것의 정체를 알고자 하고 그것의 의미를 묻고 있는 소설이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문제가 되는 것은 그 시도가 어떤 문학적 형상화를 이룩했느냐 하는 것과, 그 결과 얼마나 설득력을 획득했느냐 하는 것이다.
이 달에 읽은 소설 가운데 복거일의 『파란 달 아래』와 하재봉의 『블루스 하우스』는 우리 소설에서 자주 볼 수 없는 새로운 시도로서 주목받을 만하다. 전자가 2039년, 후자가 1999년이라는 시점을 택한 점에서, 또 과학기술의 발달을 전제로 여러 가지 첨단적 도구를 사용하면서 상상이 가능한 「그럴듯함」을 보여 주는 점에서 이 두 소설은 미래소설의 범주에 속한다.
그러나 두 소설이 그리고 있는 구체적인 세계는 전혀 다르다. 『파란 달 아래』는 달나라를 무대로 세계 열강들이 우주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하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상과학소설, 즉 SF의 요소를 갖고 있다. 그러나 연립정부의 구성에 도달한 남북한이 체제상의 갈등을 해소하지 못하고 이념적 대립을 보임으로써 월면 임시정부의 수립을 가능하게 한 점에서 예언적인 소설이다.
『블루스 하우스』는 개인적 삶의 묘사에 중요성이 더 부여된 미래소설이다. 1999년이라는 시대에 맞게 주인공들에게는 물질적인 부족이 없고 자기에게 주어진 일에 전념하는 정열도 있다. 이미 『비디오 천국』이라는 시집으로 타락한 물질문명의 세계를 냉정한 눈으로 분석하여 새로운 세대의 시인으로 주목받은 이 작가는 이 작품에서 풍요로운 시대의 빈곤한 인간의 모습을 형상화한 새로움을 보여준다. 그러나 전자는 공상과학 소설이라기엔 전반부가 너무 평탄하고 이념소설이라기에는 김일성 기지와 장영실 기지의 통합과정과 월면 공화국 선포가 지나치게 일방적 시점에 의존하고 있다.
반면에 후자는 풍요로운 시대의 빈곤한 인간이 물질주의적 외양과는 달리 정신주의적 성질을 떠고 있다는 점에서 당대소설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주인공의 내면에 깔려 있는 삶에 대한 허무의식은 1999의 시점을 그 보다 한 세대 이전의 그것으로 돌려보낼 수 있다.
그러나 이 두 작품이 개척하고자 한 문학의 영역은 가능성이 있는 풍요의 들판으로서 새로운 소설에 대한 꿈을 가진 작가들이 뛰어들어 볼만한 곳이다. 김치수<문학평론가·이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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