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한 마을 60년 역사 낱낱이 담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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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격동기를 살아 왔습니다. 고달팠지만 값졌던 우리 세대의 삶을 후세들에게 알려주고 싶어요."

충북 충주시 주덕읍 제내리 풍덕마을 이세영(李世榮.77)씨는 광복 후 60년간의 마을 역사를 7년 동안 다섯권의 책으로 펴냈다. 총 2천6백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이다.

李씨는 광복 직후부터 이장과 새마을지도자 등을 맡아왔다. 마을에서 생긴 일 중 李씨가 관여하지 않은 대소사가 없을 정도였다. 그는 "모든 일을 낱낱이 50여권의 노트에 기록했기 때문에 마을 역사를 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에 펴낸 '풍덕마을의 새마을 운동-이세영 새마을지도자 수기'에는 전기 가설.마을금고 조직.간이상수도 설치.마을안길 포장 등 마을 변천사가 조목조목 기록돼 있다.

1971년 마을회관 건립은 온 주민이 나섰던 큰 일이었다. 집집마다 공사비를 갹출했고 재일동포 등 출향인사 등에게도 성금을 거뒀다. 그래도 공사비가 모자라 주민들이 돌아가며 1~2주일씩 공사에 참여했다.

李씨는 당시 준비 과정부터 착공 이후 진행 상황을 일지로 정리했고, 건축 자재비 내역을 비롯해 공사참여 주민 명단과 일한 날짜까지 자세히 실었다. 李씨는 자신이 45년에 세웠던 한글 야학의 수업 모습과 옛 공회당(52년), 필리핀 지역사회개발요원 방문(62년) 등 빛바랜 흑백사진 60여장도 함께 담았다.

"새마을 운동으로 마을이 완전히 달라졌지요. 주민이 매일 밤 늦게까지 횃불작업을 하며 폭 2m의 꼬불꼬불한 마을 진입로(1.2km)를 폭 5m의 쭉 뻗은 도로로 만들었으니 그 노고가 이만저만 아니었지요."

98년에 펴낸 '방풍림 백년사'는 1906년 李씨의 할아버지 세대가 설립한 방풍림계(契)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지리적으로 항아리 목 부위에 위치한 마을 특성상 바람이 세차게 불어 마을 뒤편에 버드나무.오리나무 등을 1백여 그루나 심었다. 그 후 이 계는 수십년간 마을 단합을 다지는 대동계(大同契)역할을 해왔다. 한국전쟁 등을 겪으면서 잘려나가 현재 30여 그루밖에 없어 李씨는 마음이 아프다.

이 밖에 그는 '풍덕마을지(誌)'(97년)와 '풍덕마을의 촌락사'(98년), '방죽안(제내.堤內) 인물지'(2003년)를 펴냈다. 모두 자비로 1백~3백권씩 책을 발간해 주민들에게 나눠줬다.

李씨는 "80년대까지만 해도 1백여 가구, 인구 5백여명의 제법 큰 마을이었는데 지금은 주민들이 도회로 나가 채 50가구가 되지 않는다"며 안타까워했다.

충주=조한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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