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희 넘어 느껴본 "졸업의 감격"|서울Y 기청공민학교 졸업 72세 김순복 할머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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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맨 날 학교 다니는 꿈만 꾸었는데 이제 내가 학교를 졸업하게 되다니…』
국민학교 과정을 가르치는 기청공민학교를 23일 최고령으로 졸업한 김순복 할머니(72· 서울 사당2동 708의437)는 미처 말을 끝맺지 못하고 연신 기쁨의 눈물만 닦아냈다.
국민학교 6년 과정을 3년에 끝마치는 이 학교의 53회 졸업식장 (서울 YWCA강당)에서 김 할머니는 3년 개근상과 우등상을 타 선후배 및 1백여 졸업생들의 힘찬 박수를 받았다.
서울 YWCA에 의해 지난 47년 설립된 이 학교는 그간 2천3백명의 아주머니 및 할머니 졸업생 등을 배출해왔는데 김 할머니는 역대 졸업생을 포함해 최고령 졸업생이 되는 셈이다.
그도 그럴 것이 55세까지만 입학자격이 있는 이 학교가 『제발 공부를 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김 할머니의 끈질긴 애원에 손을 들어 특별히 입학을 허가했기 때문이다.
교육부인가를 받은 이 학교는 서울 Y(명동소재) 건물 지하에 교실을 갖고 있다.
어렸을적 「여자가 공부를 하면 뭐하냐」는 어머니의 만류로 한글조차 깨우칠 수 없었던 김 할머니는 일생을 공부에 대한 한을 지닌 채 늘 학교에 가서 공부하는 꿈만 꾸며 살아왔다는 것.
그러나 지난 90년 주위의 소개로 처음 이 학교에 입학하게 된 김 할머니는 지하철을 타고 다니며 하루 3시간씩 이어지는 수업시간에 결석은 물론 지각 한번 하지 않았으며 평균 93∼96점의 높은 점수를 받아 여러 번 장학금을 타기도 했다.
할머니는 산수 등 모르는 것이 있으면 큰아들(한태식·46·식당경영)에게 도움을 청했으며 아침에 일어나 한 시간씩 예습을, 방과후에는 두 시간씩 복습을 하는 것을 거르지 않은 모범생이었다.
『글자를 읽지 못해 안타까워하고 남몰래 한숨짓던 나를 이렇게 키워주신 선생님께 감사한다』는 김 할머니는 앞으로 중학교 공부에 도전해 보고 싶다고 했다.
5년 전 남편과 사별하고 슬하에 6남매, 11명의 손자·손녀를 둔 김 할머니의 졸업식장에는 아들·딸·며느리·손녀 등 10여명의 식구들이 참석해 「어머니·할머니 만세」를 외쳐댔다. <고혜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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