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비즈] 워크아웃 2년 만에 부활 … 가네보화장품 지시키 사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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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세이도(資生堂)와 더불어 일본의 양대 화장품 회사인 가네보 화장품의 지시키 겐지(知識賢治·43·사진) 사장은 이름 그대로 학구파다. 한 해에 책 100권 이상을 읽는다. 시대의 흐름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다. 오사카(大阪)에서 영업사원으로 시작했던 1985년, 그는 ‘35세에 한 사업부문 책임자, 40세에 최소한 자회사 사장이 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책상 앞에는 ‘40세까지 X일’이라고 표시되는 ‘카운트다운’ 시계까지 뒀다고 했다.

 이 같은 패기로 그는 35세에 자회사 사장이 됐고, 가네보가 경영난으로 2004년 산업재생기구의 워크아웃에 들어가자 사장으로 발탁됐다. 41세 때였다. 일본에서 종업원 1만 명 규모의 대기업 사장을 40대가 맡은 건 그가 처음이다.

 그는 워크아웃 2년 만에 가네보화장품을 화려하게 부활시켰다. 최근 발표된 지난해 실적에서 가네보화장품은 목표치를 훨씬 웃도는 매출(2000억 엔)을 올리고, 영업이익률도 11%를 넘어섰다.

 그는 “60개가 넘는 브랜드를 20개로 줄이는 선택과 집중 전략이 맞았다”고 말했다. 이 같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그는 단 한 명의 종업원도 해고하지 않았다. 대신 끊임없이 개혁 청사진을 직원들에게 설명하고 일일이 편지도 보냈다. 결국 그의 고급 브랜드 집중전략이 효과를 거두면서 백화점을 중심으로 매출이 치솟았다. 이제 그는 세계로 눈을 돌리고 있다. 2일 도쿄 도라노몬의 본사에서 만난 그는 “이제 우리 경쟁사는 시세이도가 아니라 로레알, P&G 같은 글로벌 기업”이라며 “한국,중국 등 유망시장에서 ‘가네보=최고급 화장품’이미지를 더 확고히 해 시장을 키워나갈 자신이 있다”고 장담했다.

 그러나 그에게 최근 또 하나 무거운 짐이 생겼다. 가네보화장품을 거느렸던 120년 역사의 가네보 그룹이 결국 경영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지난달 28일 문을 닫았다. 이 와중에 가네보화장품은 ‘가오(花王)’ 그룹으로 넘어갔다. 그러나 ‘가네보 화장품’의 이름은 그대로 유지된다. 지시키 사장에게는 문 닫은 가네보 그룹의 이름을 존속시켜 나가야 할 또 하나의 사명이 주어진 셈이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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