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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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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흥정은 붙이고 싸움은 말리랬다’는 속담이 있다. 흥정은 무엇이 됐든 좋은 것이니 적극 권장할 일이고, 싸움은 어찌됐든 나쁜 것이니 나서서 막으라는 뜻이다. 둘을 합쳐 보면 서로 이견이 있을 때 싸우지 말고 말로써 해결하라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흥정은 본래 물건을 사고팔기 위해 값 따위를 가지고 의논하는 일을 말한다. 판매자와 구매자 사이의 가격 조정 작업이다. 상인은 가급적 높은 값을 받고 싶고, 사려는 사람은 가능한 한 싸게 사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값이 너무 비싸면 사려는 사람이 발길을 돌릴 것이요, 구매자가 값을 너무 후려치면 안 팔면 그만이다. 흥정은 이 양 극단의 가격 차를 줄여 균형점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재래시장이나 시골 장터에서 흥정은 일종의 의례다. 상인들은 나중에 깎아줄 요량으로 값을 일단 높게 붙이고, 손님도 그런 줄 알고 값을 깎는다. 이 과정에서 양측이 벌이는 신경전이 바로 흥정의 묘미다. 결국 타협점을 찾으면 상인은 “손해 보고 판다”며 너스레를 떨고, 손님은 “모처럼 인심 썼다”며 돈을 건넨다. 흥정하는 맛에 장에 간다는 게 빈말이 아니다.

 요즘 엉뚱하게도 대학입시를 두고 흥정이 붙었다. 교육부는 어디에 쓰이는지도 모를 ‘내신’이란 이상한 물건을 입시 장터에 내놓았다. 처음에는 ‘반영률 50%’를 불렀다. 손님인 대학들은 말도 안 된다며 등을 돌렸다. 물건이 당초 얘기와 다르다는 소리도 나왔다. 원래 ‘명목 반영률’을 팔기로 했는데 ‘실질 반영률’로 둔갑했다는 것이다. 물건이 안 팔리자 교육부는 장터의 어깨들을 동원했다. 좌판 주변에 건장한 사내들을 둘러 세우고 물건을 사지 않으면 큰코다칠 것 같은 분위기를 연출했다. 우격다짐의 ‘주먹흥정’이다. 그러나 시원찮은 물건을 억지로 떠안았다간 앞으로도 계속 이 무도한 상인의 횡포에 시달릴 것을 염려한 손님들이 똘똘 뭉쳤다. 맞아도 좋으니 못 사겠다고 외쳤다. 약골인 줄 알았던 서생들이 느닷없이 대들자 교육부는 깜짝 놀라 달리 물건을 팔 방법을 강구하기로 했다. 살살 달래 보기도 했지만 한번 떠난 손님들의 마음을 돌리지 못했다. 이번에는 값을 낮췄다. ‘반영률 30%’면 어떻겠느냐고 떠봤다. 손님들의 반응은 역시 시큰둥했다.

 이즈음 ‘내신’ 이 애당초 팔 수 있는 물건이 아니라는 소리가 나왔다. 흥정거리가 아니라는 얘기다. 이윽고 교육부는 아예 좌판을 걷고 떠나라는 외침이 입시 장터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김종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