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을 중시하자(이렇게 달라져야 한다/문민시대 새교육:2)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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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학력보다 자격증 우대 풍토조성 급하다
「기업 임원승진 학력·명문대 상관관계 적다」 「고졸 올7명 승진… 실무능력 우대바람」 「삼성·현대,서울·연고대출신 42% 불과」.
2월9일자 중앙일보를 넘기다 첫눈에 들어온 경제면 기사다.
명문대 출신에게만 「떼어놓은 당상」처럼 여겨졌던 대그룹 임원승진. 그러나 찬찬히 주위를 둘러보면 기업의 실무능력 우대바람을 타고 고졸출신 임원이 하나 둘씩 늘어나는 추세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국제경쟁시대를 맞아 학력위주로 도토리 키재기식 잣대보다 점차 능력을 중시하는 사회변화의 작은 꿈틀거림일지 모르나 그 파급효과는 크다. 잘못된 우리사회의 교육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큰 톱니바퀴인 사회풍토가 제자리를 찾지 않고선 교육이란 작은 톱니바퀴가 제자리를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대우계열사인 경남금속의 임선진이사(45·성남 공장관리업무 총괄)는 93년 2월1일을 잊을 수 없다.
『봉급쟁이들 사이에서 「별」로 통하는 임원(이사대우) 승진 발령장을 받은 날입니다. 고졸출신으로 대학나온 사람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회사중역이 됐으니 감회가 큽니다.』
67년 덕수상고를 졸업한 임씨는 가정형편상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곧바로 취업전선에 뛰어들었다.
남달리 부지런히 일한 그는 남들이 1년에 최고 2호봉 승급할때 6호봉까지 승급했고,시간을 쪼개가며 85년에는 방송통신대 경영학과 졸업장을 손에 넣었다.
『저라고 왜 좌절이 없었겠습니까. 84년 고참과장 시절이었지요. 열심히 일했다고 생각했는데 차장승진에서 누락됐습니다. 학벌때문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때 속으로 다짐했습니다. 「내가 뒤질게 없다. 자신감을 갖고 일하자」고 말입니다.』
비단 기업에만 고졸출신 인재가 몰려있는 것은 아니다. 기능계 기술자격중 최상위급인 기능장출신의 대학교수도 있다.
전문기능인 양성기관인 창원기능대학에서 82년부터 용접학과 조교수로 재직해온 정치호교수(41).
정씨는 서울기계공고 전신인 서울공업고등학교를 마친 74년 경기도의 조그만 제조업체에 입사,사회에 첫발을 디뎠다.
『회사 다니면서 대학에 가려고 노력했습니다. 학력위주의 사회풍토 속에서 크게 되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에서였지요.』
그러나 정씨는 마음을 바꿨다. 원래 꿈인 교직생활이 기능장 등의 기능과정을 거쳐서도 가능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곳을 졸업한 그는 독일·일본 등 해외연수를 통해 실력을 다졌고 결국 그렇게도 원했던 강단에 섰다.
쉽지는 않았지만 정씨가 이룬 삶은 일부 특수한 의지나 능력을 가진 사람들만이 이룰 수 있는 예외적 인간승리가 아니라는 점에서 우리사회도 희망이 있음을 보여준다.
독일의 마이스터(기능장)는 많은 것을 시사한다. 기능인을 존중하는 풍토속에 국가가 인정하는 자격증이 있고 없느냐에 따라 취업이 결정되고 임금도 두배이상 차이가 난다.
그러나 우리 현실의 벽은 아직 높다. 89년에 기능장려법이 제정되고 90년 상공부 등 17개 부처에서 기능장려정책을 편다고 호들갑을 떨면서 기능인우대 시늉을 냈지만 6백여명에 이르는 기능장은 물론 기능인에게 정부차원에서의 지원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뀌고 있다는 기업의 고용관행도 오십보 백보다.
노동부 손원식직업훈련국장은 『신입사원 모집공고만 해도 대학졸업을 자격제한으로 두고 있는 현실에서는 대학졸업장이 취업자격증화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학력 못지않게 기능자격이 취업의 조건으로 정착될때 부정입학과 같은 병폐가 신문지면에서 사라지게 될 것이다.<김기평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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