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라상에 오른 황구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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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호 27면

1795년 윤 2월 9일 이른 아침, 정조(正祖)는 창덕궁을 출발하였다. 화성(華城)으로 향하는 웅장한 왕의 행차는 정조의 어머니이자 사도세자의 부인인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위한 것이었다. 살아계셨으면 혜경궁 홍씨와 동갑이라 같이 환갑을 맞게 되었을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가 있는 화성에서 회갑연을 성대하게 치르고자 함이었다. 이 당시 정조의 화성 행차와 행사 내용을 자세히 기록한 책자 『원행을묘정리의궤』에 구증(狗蒸)이라고 이름 붙인 개고기찜이 등장한다. 이 요리의 주재료가 황구(黃狗)였으니 황구찜이 수라상에 올랐다.

김태경.정한진의 음식수다

“이보다 130년 앞서 정부인 안동 장씨가 쓴 『음식지미방』에선 개장국, 누르미, 수육, 찜 등의 조리법이 나오니 당시 양반가에서도 개요리를 즐겼다는 것을 알 수 있죠.”
“4세기께 고구려 벽화에 도살된 개고기가 그려져 있으니, 개고기를 식용한 역사가 꽤 깊지.”
“우리가 개요리를 즐기는 것이 숭유주의(崇儒主義)와 관계가 있다면서요?”
“아마도 개고기 식용은 불교가 전래된 이후에는 살생을 금지하면서 점차 쇠퇴하였으리라고 여겨지지만, 조선시대에 들어오면 달라졌다는 이야기야. 유교 경전이자 유가의 예법인 『주례(周禮)』와 『예기(禮記)』에 따르면 개는 식용 가축이고, 개를 제사의 희생물로 쓴다고 했지. 『논어』에서도 제사에 개고기를 쓴다고 했고. 그런데 조선왕조의 숭유주의는 결국 주(周)로의 복고주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잖아. 중국의 주나라와 춘추시대에는 개고기를 많이 먹고 공자도 개고기를 먹었으니, 개고기 식용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는 거야.”
“그거 말이 되네요. 그런데 『동의보감』에서는 ‘개고기는 성질이 온화하고 독성이 없으니 오장을 편안하게 하며 혈맥을 조절하고 장과 위를 튼튼하게 하며, 골수를 충족시킨다. 허리와 무릎을 따뜻하게 하고 기력을 증진시킨다’라고 했죠. 바로 개고기를 약이 되는 음식으로 보고 있으니, 숭유주의에다 약선적인 요소가 더해져 조선시대에 개고기 요리가 크게 발달할 수 있었다고 볼 수 있겠네요.”
“그렇지. 특히 복날 개장국을 많이 먹는 이유도 당연히 더위 때문에 허약해진 몸을 보신하려는 것이잖아.”
한의학에 따르면 개고기는 성질이 몹시 더운 것으로, 먹으면 양기를 돋우고 허한 곳을 보충한다고 한다. 따라서 개장국은 오행설에서는 불(火)에 해당하고 복날은 쇠(金)에 해당하니, 불로써 쇠를 넘어서는 것(火剋金)으로 개장국을 먹어 더위를 이겨낸다는 것이다.
“결국 더운 성질의 개고기를 먹음으로써 더위를 물리친다는 ‘이열치열’의 원리가 작동하는 셈이네요.”
“그런 면에서 본다면 개장국을 보신탕이라 부르는 것이 이상하지 않지. 게다가 개고기를 양반도 즐겼지만, 가난한 서민이 가장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음식이었잖아.”

지금은 가격이 만만치 않지만 예전에는 값싸고 사람의 근육에 가까운 아미노산 조성
을 가진 질 좋은 단백질이라 할 수 있는 개고기로 얼큰한 국을 끓여 먹으니 개장국은 영양보충에 좋은 서민의 음식이었다.
서울 서대문에 있는 ‘평양옥’(02-363-7058)은 개뼈다귀를 푹 고아 진한 육수를 만드는 독특한 집이다. 그래서인지 탕이나 전골의 구수한 맛이 더운 여름날 발길을 그리로 옮기게 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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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것 먹기를 낙으로 삼는 대학 미학과 선후배 김태경(이론과실천 대표)ㆍ정한진(요리사)씨가 미학(美學) 대신 미식(美食)을 탐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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