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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부자들만의 은밀한 행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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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위크맞춤 정장에다 맞춤 책까지 부자들을 노리는 상품은 수없이 많다. 하지만 이제 없는 게 없는 특별한 부자를 겨냥한 신상품이 등장했다. 맞춤 자서전이다. 돈 많은 아르헨티나 사람 몇 명이 설립한 출판사 마이스페셜북닷컴은 의뢰 받은 대로 자서전을 제작해준다. 원고 작성에서 디자인, 인쇄까지 일체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요금은 기천 달러에서 10만 달러 사이. 그 정도 돈을 선뜻 낼 만한 사람의 일생을 담은 책이다. 고급스러운 종이 위에 부(富)와 특권을 누린 그들의 삶이 생생하게 보이도록 사진, 개인 서신 등이 정교하게 배치된다. 글은 주인공의 부자친구들이 전하는 말과 재미있는 일화로 채워진다. 뉴욕의 조사업체 럭셔리 인스티튜트의 밀턴 페드라자 소장은 사모투자 전문가로 유명한 어느 억만장자를 맞춤 자서전의 한 예로 들었다.

최근 그 투자가는 아내에게서 생일선물로 맞춤 자서전을 받고는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내 일생이 여기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그는 말했다. “이보다 더 나 자신을 위한 물건을 상상할 수 있나? 이거야 말로 진정한 명품이다.”

사실 지금의 명품 산업은 과거와 크게 다르다. 명품 핸드백? 이미 수년 전에 보편화됐다. 맞춤 요트? 일부 유행을 선도하는 항구에선 흔해 빠졌다. 명품업자들조차 틀에 박힌 기존 상품에 따분해진 듯하다. 일류 디자이너들이 할인매장용 옷을 만들고, 일류 호텔 체인이 대리석으로 지은 싸늘한 성채 건물 대신 해변가 방갈로를 짓지 않는가. 수년 동안 세계적으로 전례 없이 부자가 크게 늘었다.

메릴린치-캡제미니의 2006년도 세계의 부(富) 보고서에 따르면 백만 달러 이상의 재산가가 약 870만 명이다. 그들이 가진 재산의 총계는 10년 전 16조6000억 달러에서 지금은 약 33조3000억 달러로 불었다. 게다가 명품의 확산으로 백만장자에 들지 못하는 수백만 명도 어느 정도 수준의 명품은 어렵지 않게 즐기게 됐다. 피렌체 수녀원에서 수공으로 만든 화장품을 누구나 인터넷으로 구입하고 루브르 박물관이 아부다비에 지점을 개설하는 시대에 진정으로 독점할 수 있는 명품이 과연 있을까?

물론 있다. 명품은 속성상 늘 더 높은 차원을 추구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지금 명품 산업은 전례 없는 급격한 변화를 겪는 중이다. 우선 고객층이 이동하고 있다. 세계의 새로운 지역으로 부가 계속 확산되기 때문이다. 명품의 유통 방식도 달라져 간다. 과거엔 명품을 어떻게 인터넷으로 구입하느냐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지만 지금은 ‘온라인 명품’이 유행이다. 외식, 여행, 오락, 소매업체의 ‘회원 전용’ 서비스도 크게 늘었다. 그래서 요즘 부자들은 수준이 같은 사람들끼리 어울려 자기들만의 은밀한 사치를 즐기고 싶어 한다.

무엇보다도 고급 상품과 서비스의 속성 자체가 변했다. 지금의 명품 소비자들은 겉으로 드러내기보다는 신중함, 특권, 뜻밖의 깜짝 서비스, 재미, 때로는 비밀스러움까지 추구한다. 그들은 지미 추 명품 구두나 맞춤 벤틀리 승용차를 원치 않는다. 또 파리의 명품 보석상 JAR에 예약하려고 경쟁하거나(반드시 당일 예약이 가능하지는 않다) 록 가수가 공연하고 노벨상 수상자들이 강연하는 휴양지에 초대받으려 들지도 않는다.

그들은 무엇보다 의미와 정서적 공감대, 그리고 유대감을 원한다. ‘박애주의 여행’이 부쩍 늘어난 사실이 하나의 증거다. 오지의 초호화 휴양지에 가서 느긋하게 해변에서 놀다가 틈틈이 인근 마을에 학교를 짓거나 정수 사업에 돈을 대는 소규모 재단 설립에 참여한다. 그들은 보통사람들이 모두 하는 일이 아니라 빌 게이츠 같은 세계 최고의 부호들과 똑같이 해보려고 한다.

소비자들의 눈이 점점 높아지고 요구가 많아지자 명품업체들도 사업 모델을 재고하게 됐다. 사실 때늦은 감이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명품 회사는 패션이면 패션, 와인이면 와인 등 상품의 종류에 따라 엄격하게 구분됐고 주로 2~3세대 가족들이 운영했다. 대기업이라곤 LVMH, 피노-프렝탕-루두트밖에 없었다. 그런 대기업도 거의 예측 가능한 상품을 내놓았다. 예를 들어 대중 상품(루이뷔통 핸드백)과 고급 상품(보테가 베네타 드레스)을 섞어 고객층을 늘리는 동시에 이윤과 브랜드 가치를 유지했다.

그래도 별 문제가 없었다. 명품 산업은 지난 몇 년간 연간 약 8%씩 성장해왔다. 소매업 전체의 성장률보다 높다. 그러나 보다 젊은 세대의 명품 소비자들이 일상적인 상품과 서비스에 싫증을 내기 시작했다. 종합금융그룹 HSBC의 명품 분석가 안토인 벨지는 “10년 전만 해도 여성 명품 소비자라면 고급 핸드백을 겨우 한두 개 가진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지금은 네댓 개씩 가졌다”고 말했다.

동시에 젊은 세대는 부모보다 명품 구입에 돈을 더 많이 쓴다(펜실베이니아주 소재 유니티 마케팅사의 조사에 따르면 X세대는 베이비부머보다 명품 구입에 연간 약 1만6000달러를 더 지출한다). 또 그러고도 남은 돈을 쓸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를 찾는다.

그러자 부실 기업을 인수해 회생시키는 사모투자 전문회사들이 그 틈새를 파고들었다. 넘쳐나는 현금으로 새 목표물을 노리는 사모투자 기업들이 명품 브랜드를 사들인다. 최근엔 질 샌더와 지미 추가 그들의 손에 넘어갔다. 아울러 가라바니 발렌티노, 조르조 아르마니, 칼 라거펠드 같은 패션계 원로들의 은퇴가 임박하면서 패션전문가가 아닌 금융업자들이 명품 산업의 미래를 이끄는 경우가 많아지리라 예상된다.

그런 세태를 개탄하는 업계 인사들도 있지만 금융 전문가가 수익성과 창의성 양면에서 모두 큰 도움이 된다는 점이 이미 입증됐다. 베르사체 같은 브랜드는 새로운 경영진 아래 시상식용 드레스 전문 업체에서 벗어나 제트기와 자동차의 인테리어 디자인 같은 분야로 이동해간다.

지난해 도나 카란은 한걸음 더 나아가 명품 항공사 설립을 고려하기 시작했다. 한편 고야드(고급 가방)와 발렉스트라(가죽 제품)같이 고루하고 잘 알려지지 않았던 브랜드는 사모투자 기업에 인수되면서 그 상품의 은연한 멋을 잘 아는 새 고객층을 위해 다시 태어났다.

투자전문회사 엘릭서 어드바이저스의 게일 자우더 같은 업계 전문가들은 풍부한 현금이 유입되면서 명품 업계가 특색 없이 균질화되기는커녕 더욱 개성과 활기를 띠어간다고 생각한다. “사모투자 기업들이 더 많은 틈새 브랜드의 성장과 생존을 이끌 전망”이라고 자우더는 내다봤다. 이미 미국의 위스콘신주(W. C. 러셀 모카신사)나 앨라배마주(수제 패션업체인 프로젝트 앨라배마사) 등 이전에 들어본 적이 없는 곳에서 명품 브랜드가 나왔다.

자금 확보가 쉬워졌고 중소기업이라도 인터넷을 통해 먼 곳의 고객들에 닿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흔해 빠진 파리의 디자인 브랜드보다 미국 중부의 재봉사들이 수놓은 2만 달러짜리 드레스를 소유한다는 뜻밖의 재미를 즐기는 새로운 소비자들의 입맛도 그런 추세를 가능케 했다.

그렇다고 명품 고객들이 파리 몽테뉴가(街)를 더 이상 찾지 않는다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점점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도 명품이 생산되는 경우가 늘어난다는 얘기다. 세계화와 부의 확산, 그리고 명품 수요는 서로 맞물려 있다. HSBC에 따르면 현재 활기를 띠는 명품 시장에는 카자흐스탄, 미국 디모인, 노르웨이 오슬로가 꼽힌다. 중국의 중소 도시들도 마찬가지다.

그곳의 개인적 부의 수준도 홍콩과 상하이 같은 소비중심지와 맞먹기 시작했다. 미국 시카고의 경우 첨단 전문상점보다는 대형 백화점으로 더 잘 알려졌지만 지금은 찾기 어려운 작은 점포에서 한정된 상품을 파는 일류 디자이너가 많다. 러시로(路)에 있는 이클람에선 2만 달러짜리 드레스가 재고품이 쌓일 틈도 없이 팔려나간다.

무엇보다 개성을 중시하는 고객들은 아제딘 알라이아처럼 약간 덜 유명한 디자이너를 선호한다. 그들 중 다수는 선택한 상품이 구입 당일 항공편으로 별장에 배달되기를 원한다. 상점 주인 아크람 골드먼은 “판매된 상품을 비행기로 부치는 게 관례가 됐다”고 말했다.

이런 부자들은 흡족한 서비스라면 어떤 가격이라도 지불할 용의가 있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들도 즉시성과 편리성을 점점 더 중시한다. vivre.com, net-a-porter.com, 20ltd.com 같은 웹사이트에선 2만2500달러짜리 에릭슨 비몬 샹들리에나 800달러짜리 로로 피아나 여행용 베개를 다른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구입할 수 있다.

럭셔리 인스티튜트의 조사에 따르면 부유한 미국인의 98%가 그런 상품과 서비스를 웹을 통해 구입하며, 자주 인터넷으로 구입하는 사람이 절반이 넘었다. 에르메스 같은 최고급 브랜드도 어쩔 수 없이 온라인 판매를 시작했다. 온라인 커뮤니티 세컨드 라이프의 회원들은 올해 초 크리스천 디오르의 빅투아르 드 카스켈란느가 세공한 유일무이한 보석을 누구보다도 먼저 구경하는 특권을 누렸다.

이런 부자들은 온라인 쇼핑이 아니라도 자택에 앉아 상품을 구입하면서 사생활을 보호한다. 고급 소매업계에서는 가정방문 판매가 필수로 자리 잡았다. 고객의 자택이나 다른 사적인 장소로 제작자가 직접 찾아가 소수의 고객만 모아놓고 상품을 보여주는 트렁크 쇼도 더욱 흔해지는 추세다.

런던 빅토리아 앤 앨버트 박물관의 패션 학예사 소네트 스탠필은 이렇게 말했다. “패션쇼가 미디어 구경거리가 됐고 디자이너들은 무대 위에서 할인 상품과 고급상품을 동시에 보여준다. 사생활과 배타성이라는 고전적 명품의 개념을 완전히 벗어난 형태다. 하지만 과거에는 고객이 조용히 앉아 담배를 피우거나 차를 마시면서 상품을 구경했다. 이제 그런 은밀한 분위기가 다시 돌아오기 시작했다.”

부자들은 여행할 때도 자기 집 같은 편안함을 원한다. 일부 고급 호텔은 단골손님용으로 침대 시트에 이름의 첫 자를 새긴다. 런던의 고급 도우미 서비스인 퀸테센셜리는 2008년 회원 전용 호텔 체인을 설립할 계획이다. 손님들은 체크인 할 필요도 없다. 현관 판독기에 카드를 갖다 대면 곧바로 직원이 뛰어나와 안내해준다. 여행용 가방도 늘 사용하던 방으로 신속하게 옮겨다 준다.

지금의 호화 여행은 거의 모든 면에서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은밀함을 중시한다. 세련된 여행객이라면 무료로 제공되는 고급 샴페인 한 병이나 거대한 플라스마 스크린 TV(요즘은 중간급 호텔에서도 보통 제공된다)보다는 사려 깊은 서비스를 더 좋아한다.

그곳을 떠날 때 승용차 뒷좌석에 현지에서 서식하는 향기 좋은 꽃으로 만든 화환을 놓아둔다든지 호텔 지배인이 자신이 애용하는 현지 술집으로 예고 없이 안내하는 깜짝 서비스를 제공한다든지, 또는 고객이 좋아하는 음식의 조리법을 출력해 계산서와 함께 건네주는 식이다. 소규모 고급 호텔 그룹 를레 & 샤토의 CEO 자크-올리비에 쇼뱅은 “한마디로 ‘소유냐 아니면 체험이냐’의 문제”라고 말했다.

‘체험’을 추구하는 부자들의 요구에 부응하려는 회사도 많이 생겨났다. 집사, 하녀, 개인 요리사, 와인 웨이트 등 새로운 가사 도우미를 훈련하는 서비스가 누구나 쉽게 할 만한 사업으로 각광받는다.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에 있는 스타키 국제 가사관리 연구소 같은 직업훈련소가 호황을 맞았다.

그런 곳의 연수생들은 드러나기를 원치 않는 자수성가한 사업가들에게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법을 배운다. 예를 들면 와이오밍주 잭슨홀에 1000만 달러짜리 낚시용 방갈로를 소유한 사람이라면 고급 식기에 3코스 식사보다는 테라스에서 자녀들과 함께 햄버거 먹기를 더 좋아하기 때문이다.

의료 도우미 서비스업체 피너클케어는 건강 조언뿐 아니라 예약하기조차 어려운 불임치료 전문가나 암 전문가와 연결시켜주기도 한다. 패밀리 오피스 익스체인지사는 세계 각지의 가족투자 전문가들을 한 자리에 모아 주식 정보를 교환하고 일류 변호사나 중개업자를 서로 알선해준다.

부자가 부자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런 추세는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이미 사교계 명사들이 새로운 틈새 명품 브랜드를 개설했다. 자신과 같은 부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가장 잘 알기 때문이다. 럭셔리 인스티튜트의 페드라자 소장은 지금의 부유층 자녀들이 앞으로 개인전용 제트기 관리 회사나 부자들을 위한 새로운 웹사이트를 운영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세계 최고의 부자들이 식당 추천에서 사업계획까지 모든 정보를 교환하는 비공개 사이트가 이미 숱하다(럭셔리 인스티튜트도 한 사이트를 운영 중인데 재산 규모가 회원 가입의 기준이다). “앞으로 부자는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점점 더 비공개적이고 폐쇄적인 커뮤니티에 존재하게 된다”고 페드라자는 말했다.

어떻게 보면 불길한 추세일지 모른다. 그러나 고무적인 반작용도 있다. 원하는 모든 것을 가졌을 때는 가장 멋지게 할 만한 사려 깊은 행동은 전부를 베푸는 자선이다. 젊은 금융가와 기업가들 사이에서 자선 기부가 크게 느는 추세다. 자신의 이름을 딴 재단을 설립해 활동하는 경우도 많다.

HSBC의 최신 명품 조사보고서에는 미국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의 욕구 단계가 도표로 그려져 있다.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의 레드 카드나 록 가수 보노의 친환경 의류 등 최근의 가장 성공적인 명품 라인 몇몇이 바로 그 더 높은 욕구 단계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엘릭서의 자우더는 “상품에 진정한 의미를 부여하는 게 명품의 미래”라고 말했다. 차세대 명품과 최고급 서비스의 형태가 어떨지 지금으로선 단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더 이상 아쉬울 게 없는 부자들의 심금을 울려야 진정한 명품일지 모른다.

RANA FOROOHA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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