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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경쟁력이 국가경쟁력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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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인생의 성공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어떤 사람은 ‘실력’이라 할 것이고, 또 어떤 사람은 ‘운’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출신 배경’을 꼽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27개 회원국 국민 2만6755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12월 여론조사를 하면서 바로 이 질문을 했다. 성공 요건 두 가지를 들라고 했더니 가장 많은 사람이 교육(62%)을 첫째로 꼽았다. 다음이 노력(45%)이었다. 이어 인맥(26%)·운(24%)·머리(17%) 순으로 나왔다. 출신 배경을 꼽은 사람은 9%에 불과했다.

 나라별로 응답에 적지 않은 차이가 난다는 점은 흥미롭다. 동부와 남부 유럽 국가들의 경우 인맥이나 운, 출신 배경을 지목한 사람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컸다. 반면 북유럽과 서유럽은 교육을 꼽은 사람이 상대적으로 많았다.  

 특히 덴마크의 경우 응답자의 83%가 성공의 첫째 요건으로 교육을 꼽아 EU 회원국 중 교육에 대한 기대가 가장 컸다. 그래서일까. 국내총생산(GDP) 대비 교육예산 비중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가 덴마크다. 2005년 덴마크 정부는 GDP의 8.2%를 교육 관련 공공지출에 썼다. 덴마크의 GDP 대비 사교육비 비중은 0.3%에 불과하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5월 발표한 ‘2007년 국가경쟁력 보고서’에서 덴마크의 교육경쟁력은 세계 2위로 평가됐다. 교육도 투자라고 보면 결국 뿌린 만큼 거둔 셈이다. 교육경쟁력과 국가경쟁력은 대개 같이 간다. IMD의 2007년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덴마크는 미국·싱가포르·홍콩·룩셈부르크에 이어 세계 5위였다. 도시국가를 제외하면 사실상 세계 2위, 유럽 1위인 셈이다.

 IMD가 평가한 한국의 국가경쟁력은 29위로, 교육경쟁력 순위와 정확하게 일치했다. 공교롭게도 GDP 대비 교육예산 비중(2005년 4.6%)도 세계 29위였다. 며칠 전 교육인적자원부는 IMD의 교육경쟁력 평가와 관련한 보도자료에서 “GDP 대비 교육예산 비중이 덴마크 등 상위 국가에 비해서는 아직 부족한 수준”이라며 “교육여건 개선을 위해 정부 재정 지출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덴마크처럼 정부의 교육예산 비중을 늘리면 우리의 교육경쟁력도 높아지게 돼 있으니 돈을 더 달라는 소리다.

 하지만 사교육비까지 포함하면 한국의 교육비 부담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이다. 정부의 한 해 교육예산 31조원과 거의 비슷한 규모의 돈이 학부모 호주머니에서 사교육비로 나가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한국의 교육경쟁력이 이나마 유지되는 것도 학부모의 눈물겨운 노력 덕분이다. 이를 외면하고 교육부가 교육예산 타령을 한다는 것은 후안무치한 노릇이다.  

 학급당 학생 수나 교사 1인당 학생 수 등에서 아직 우리가 선진국에 뒤지는 것은 사실이다. 이를 개선하려면 예산이 더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학부모의 등골을 휘게 하는 엄청난 사교육비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교육제도가 마련되지 않는 한 교육예산 증액과 이를 통한 교육경쟁력 향상은 공염불일 뿐이다.

 IMD의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프랑스는 한국과 비슷한 28위로 밀려나 있다.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은 이를 타개하기 위한 핵심 개혁 과제 중 하나로 교육을 꼽고 있다. 특히 대학 개혁이다. 평준화 이후 뒤처진 프랑스 대학의 경쟁력을 끌어올리지 않고서는 국가경쟁력을 높일 수 없다는 것이다. 사르코지 정부는 그 열쇠를 대학의 자율성 확대에서 찾고 있다.

 얼마 전 인터뷰에서 베르트겔 하더 덴마크 교육장관은 초·중등 과정의 우수한 공교육과 철저한 직업교육, 대학의 자율성 등 세 가지를 덴마크 교육경쟁력의 요체라고 설명했다. 돈은 돈대로 쏟아부으면서 교육경쟁력은 29위밖에 안 되는 한국의 한심한 현실을 타개할 수 있는 방법은 이미 나와 있다. 문제는 그것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리더십이다.

배명복 국제담당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