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질 입시풍속(분수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영하 10도의 어둑한 새벽길에 어깨를 움츠리며 줄줄이 대학문을 향하는 입시생들,대학문 앞은 이미 자동차 대열로 꽉 들어차고 경찰의 호각소리가 새벽을 찢는다. 1차시험에서 낙방의 설움을 맛본 입시생들의 어깨는 추위탓이 아니라 마음의 두려움으로 떨리는듯 해서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의 가슴마저 안쓰럽다. 이른 출근길에 후기대학 주변 풍경을 보면서 이젠 저 풍속도 바뀌겠지 하는 기대를 가져본다. 29일의 후기대학 입시를 끝으로 12년간의 학력고사 입시풍속이 이젠 막을 내렸다.
12월 하순의 전기대학,1월 하순의 후기대학 학력고사 때마다 출근시간이 10시로 늦춰지고 이른 새벽의 민족 대이동이 벌어지는 진풍경이 내년부터는 사라질 것이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이 고3의 8월과 11월에 실시될 예정이어서 혹한기의 일제고사라는 어려움은 우선 넘기기 때문이다.
1백37개 4년제 대학중 대학별 본고사를 보겠다고 나선 대학이 40개 대학이었지만 다행스럽게도 본고사 실시를 철회한 대학이 늘어나 35개 대학으로 줄어들 형편이다. 여기에 전·후기 대학으로 나뉘어지고 같은 전기대학이라 해도 1주일간의 시차를 둔 본고사를 볼 수 있게 되어 있으니 한날 한시에 대학시험을 치르는 입시난리는 일단 해소될 것이다.
입시 당일의 풍속만 달라지는게 아니다. 벌써 강남 8학군의 이른바 명문고 진입을 위한 세입자 수가 줄어들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내신성적 40% 반영이라는 제도변화가 8학군 무용론을 부추긴다. 새 입시제도가 소기의 성과를 거둘 때는 대학별 본고사를 굳이 봐야할 이유가 없다는 여론이 높아질 것이다. 이에 따라 국립교육평가원도 똑같은 시험문제를 두고 수학능력을 평가하는 학력고사 방식에서 벗어나 대학의 건학이념과 전공별에 따른 문제를 대학에 제공하는 문제은행식의 입시변화를 또 한번 시도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이 모든 낙관적 기대가 새롭게 도입되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성공적 정착에 따라서 이뤄질 일이다. 새로운 제도변화에 따른 학교교육의 정상화가 어떻게 이뤄질 것인지,사고력과 창의력을 중시하는 수학능력시험의 출제가 어떤 모습으로 효과를 거둘 것인지,여기에 따라 입시지옥이라는 잘못된 세시풍속을 청산할 수 있느냐,없느냐는 갈림길에 서게 된다.<권영빈논설위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