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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 정치대국 될까 불 경계/독­불 정상화 30년… 힘균형 흔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독 냉전종식·통일계기 입지강화 모색/불 맹주부상 막으려 통합으로 발묶기
독불관계 정상화 30주년을 맞아 파리­본축의 장래에 새로운 관심과 논의가 집중되고 있다.
2차세계대전의 상처가 완전히 아물기 전인 1963년 1월22일,프랑스의 드골대통령과 서독의 아데나워총리는 파리 엘리제궁에서 불독화해·협력조약(일명 엘리제조약)에 서명,역사적인 독불 적대관계의 청산과 협력의 새시대 개막을 선언했다.
엘리제조약 서명 3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지난 21일 본에서 만난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과 콜 독일총리가 강조한대로 지난 30년간 파리­본축은 유럽을 안정과 번영으로 이끄는 견인차 노릇을 착실히 해왔다. 전후 냉전 속에서도 양국관계 정상화를 바탕으로 유럽은 경제적 번영과 정치적 안정을 누려왔고 원대한 유럽통합의 기틀을 마련했다.
드골과 아데나워가 30년 전에 그렸던 독­불축은 독일의 분단과 냉전의 지속을 전제로한 것이었다. 정치적 주도권은 프랑스가,경제적 주도권은 독일이 각각 나누어 가짐으로써 유럽내 힘의 균형을 이룬다는 것이 두사람이 그렸던 그림의 골격이었다.
그러나 지난 89년 베를린장벽의 붕괴와 뒤이은 동서독 통일,소련 등 동구제국의 붕괴와 이에 따른 냉전종식은 파리­본축의 토대가 된 힘의 균형에 중대한 변화를 초래했다. 통일을 계기로 정치적으로도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는 분위기가 독일내에 고조되면서 프랑스는 독일의 유럽 지배 가능성을 심각히 경계하는 상황이 전개됐다.
독일은 유고연방에서 탈퇴한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에 대해 일방적으로 독립을 승인하는가 하면 통일에 따른 인플레 압력을 이유로 일방적인 금리인상을 계속함으로써 프랑스의 불안을 가중시켰다.
때마침 프랑스는 중거리 핵미사일인 아데스를 실전 배치,독일의 심기를 자극했고 마스트리히트조약의 국내 비준과정에서 프랑스 정치지도자들은 독일의 침략근성을 공공연히 문제삼아 독일측의 강력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양국관계 정상화 30주년을 맞은 지금,힘의 균형이 서서히 독일쪽으로 기울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로 인한 파리­본축의 동요는 모두에게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서로 잘알고 있다. 통독 이후 몇번의 사소한 마찰에도 불구하고 양국이 독불협력의 기본틀에는 일절 손을 대지못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프랑스 프랑화에 몰리는 환투기 압력을 독일이 자기일처럼 나서 막아주고 있다거나,장차 유럽합동군의 기초가 될 독불합동군 창설 등은 파리­본축의 장래와 관련,긍정적 요소로 평가되고 있다.
유럽통합의 성패는 파리­본축의 건재여부에 달렸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반적 관측이다.
단순한 시장통합 수준에 머물러있던 유럽통합 논의가 베를린장벽 붕괴를 계기로 통화단일화와 공동의 외교·안보정책 수행을 근간으로 하는 유럽동맹 차원으로 승화하고 있는 것은 사실 독일을 유럽통합에 귀속시킴으로써 독일의 독자적인 주도권 행사에 쐐기를 박으려는 프랑스의 의도가 크게 작용한 결과다. 통일에도 불구하고 독일이 과거의 군국주의적 전철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내외에 과시할 필요는 독일로서도 유럽동맹에 대한 적극적 동참의 중요한 명분이 되고 있다.
독불 두나라가 서로 등을 돌릴때 유럽의 평화가 깨진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하는 사실이다. 또 유럽통합 열차의 전진을 멈추게 할 수 있는 나라도 바로 이들 두나라 뿐이다. 중대한 시험기를 맞은 파리­본축의 건재여부에 유럽통합,나아가 유럽평화의 장래가 달려있는 셈이다.<파리=배명복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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