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시각」바뀌어야 한다/김영배(중앙칼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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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요즘처럼 통일이라는 말이 현실감있게 느껴졌던 적이 없었을 것이다. 먼 앞날의 요원한 얘기처럼 들리던 통일이 이제 눈앞의 현실로 접근하고 있다는 느낌들을 누구나 갖기 시작했다.
○단발성 인기정책 경계
외국의 저명한 연구기관들은 2000년대엔 통일한국이 국제사회에서 활약하고 있을 것이라고 단정하다시피 결론내리고 있다. 어느 외국의 지도자는 아예 2000년대의 초반 어느 시기에 북한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까지 말했다고 한다. 김영삼 새정부도 임기중 통일을 내다보고 있다. 앞으로 10년안에 남북문제에 관한 중요한 변화가 올 것이라는데는 비슷한 의견들이다. 그와 같은 상황이 언제,어떤 방법으로 발생할는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김일성의 사망이 결정적인 계기가 될 것이라는 이도 있고,북한의 경제적인 붕괴가 계기가 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그런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이런 시절에 어떻게 남북문제에 대처할 것이냐는 것이다.
6공은 열성적으로 북방정책을 추진했고 그만큼의 성과를 얻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빚어진 많은 문제점들은 우리에게 남북문제의 대응방식에 관한 귀중한 교훈들을 남기고 있다.
그 첫번째는 정책의 일관성일 것이다. 초기에 북방정책을 추진하던 시절엔 방식의 옳고 그름을 떠나 정책적인 비전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공산권에 대한 개방과 교류의 확대가 그것이다. 그러나 정작 남북 당국간의 대화가 시작되면서 정책기조는 들쭉날쭉이 되었다. 부처간의 알력,서툰 정세분석,한건주의 인기정책…,이런 것들이 정책의 흐름을 왜곡시키는 결과를 빚게 된다.
「굶주린 북한주민 수백만명이 휴전선을 넘어 밀려 내려올지 걱정」이라는 것이 최고정책결정기관의 소박한 판단이었다. 그러한 정세분석을 토대로 남북정상회담이 추진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문제다. 남북정상회담을 얻어 내기 위해 북한의 권력세습을 묵인했다는 말도 있다.중국이나 구소련도 꺼리던 일이었다. 정상회담이 남북문제의 진전을 위해 큰 계기가 될 것은 틀림없겠지만 그렇다고 정상회담을 위해 정책의 기조를 희생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국민적 합의 이끌어야
6공의 남북정책이 일회성의 인기나 노린 것이라고 비판받는 중요한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두번째 중요한 문제점은 통일정책의 국민적인 합의다. 통일문제는 한동안 일반에게는 논의하기 거북스러운 금기사항이었다. 잘못 통일정책에 관해 말했다가는 용공분자로 취급받거나 운동권의 과격분자로 따돌림받아야 했다. 어느 기관에 끌려갈지도 모르고 신분상의 불이익을 받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 때문에 국민 모두가 동참해야할 통일논의는 외면당하고 홀대받았다. 그것을 금역의 시렁에서 끌어내려 누구나 참여하고 알 수 있게 공개해야 한다. 가장 긴요한 것은 안기부의 비밀주의적인 전횡이나 정보의 독점이 시정되는 일이다. 남북문제에 대처하는 정부기구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조정이 필요한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통일에 대한 감성적인 환상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통일논의엔 걸핏하면 민족적인 감성이 앞서게 마련이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거기에는 환상과 열정과 눈물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상이한 두 체제의 통일이 토론에 의해서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냉정하게 깨달아야 한다. 통일에 대한 온갖 구상과 열정은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감성적으로 흘러서는 안되는 것이다.
최근 통일문제에 대한 새 정부의 갖가지 구상이 나오고 있다. 그중에는 핵문제의 유엔제소니,인권문제의 언급 등 지난 시절의 대결주의적인 인식들이 깔려있는게 아닌가 하는 우려할만한 요소들도 보인다.
남북의 온전한 통일은 민족의 통합이어야 하고 한 정치체제로의 통합이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정치적 통합은 그렇게 쉽사리 이뤄지지 않는다. 때문에 남북의 정치적인 통합은 배경에 깔아둔채 그것을 포섭할 수 있는 보다 포괄적이고 광범한 통합의 끈을 엮어나가야 하는 것이다.
○교류의 연결고리 중요
벌써 환동해경제권이니 중국·러시아의 경제공동개발지대와 같은 의견이 주변국에서 제기되고 있다. 우리도 남북모두를 초월하고 그 모두를 포괄하는 역내경제기구를 추진하거나,환경대응기구·공동어로기구·공동관광기구,그리고 연변 등에서의 가족상봉,경제교류 등 경제·사회적인 연결고리들을 자꾸만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 이제 남북문제는 단순한 대결주의시대의 시각으로만 접근할 단계를 넘어서고 있는 것이다.<통일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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