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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변호사가 보는 드라마 '쩐의 전쟁'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6호 12면

사진제공 SBS

1. 드라마 : 사채업자 찾아와 행패
현실 : 폭력 대신 지능적 압박

신체포기 각서 없지만 ‘노예계약’은 있다

주인공 금나라(박신양 분)의 아버지가 딸을 시집보내는 결혼식장에 악덕 사채업자 마동포(이원종 분) 일당이 나타나 행패를 부리는 장면이 나온다. 하지만 결혼식장이나 직장을 찾아가 물리적인 힘을 행사하는 것은 현실성이 떨어진다. 형법상 업무방해죄로 처벌될 수 있다. 요즘은 사채업자, 채권 추심하는 직원이 눈에 띄게 불법행위를 저지르는 경우는 드물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 지능적으로 채무자를 압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전화와 우편물을 주로 이용한다. 직장인에게는 업무시간에 하루 30차례씩 전화를 걸어 직장을 다니기 어렵게 만든다. 주부에게는 빚을 갚지 않으면 시집 식구들에게 알리겠다고 암시한다. 심지어 사기 혐의로 형사고소를 할 것처럼 고소장ㆍ내용증명을 발송한다. 가압류 결정문도 채무자에게 보내는데, 자세히 살펴보면 작은 글씨로 ‘견본’ 도장이 찍혀 있다. 채무자를 놀라게 하려는 것이다. 전화와 우편물을 통한 심리적 공세가 참지 못할 정도이면 전문가의 조언을 받아 파산신청을 하는 수밖에 없다.

2.드라마 : 성매매 강요 각서
현실 : 썼어도 법적으로 무효

드라마에서 사채업자가 주인공 금나라의 아버지에게 ‘신체포기 각서’를 쓰게 하고
여동생 금은지에게 유흥업소에서 성매매를 하도록 강요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상담한 수천 명의 금융채무자 가운데 신체포기 각서를 요구받은 사람은 없었다. 드라마의 극적 효과를 노리기 위한 상황 설정으로 보인다. 문명사회에서 사람의 신체를 사고파는 것은 법률적으로 무효일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협박죄가 성립된다.

다만, 각서를 활용한 빚 독촉 행태는 자주 눈에 띈다. 예를 들면 사채업자가 김밥집을 자신의 명의로 얻어 채무자에게 대신 장사를 하게 하고 “앞으로 성실히 운영하겠다”는 각서를 쓰게 한다. 사채업자는 매상을 거의 전부 가져가고 이자도 높은 금리로 정한다. 사실상의 노예계약이다. 아무리 열심히 장사를 해도 빚에서 헤어날 수 없다.사채업자 자신을 계주로 해서 계를 들게 하고 고리의 계 이자를 물도록 하는 각서도 있다. “노래방 도우미를 해서 빚을 갚는 사람도 많은데 당신은 무엇을 하느냐”는 말을 들었다는 주부도 많다.

당장 자리를 모면하기 위해 각서를 써줬다고 해서 그대로 지킬 의무는 없다. 각서 내용대로 빚을 갚을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된다면, 이행 중단이든 파산이든 검토할 때가 된 것이다.

3.드라마 : 아버지 빚에 쫓기는 주인공
현실 : 부모 채무 갚을 의무 없어

주인공 금나라가 아버지의 빚을 갚으라는 사채업자의 독촉에 직장을 잃고 거리의 노숙자로 전락한다. 어느 정도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물론 부모가 빚을 남긴 채 숨진 경우 자녀는 3개월 이내에 상속포기 또는 한정상속 승인을 법원에 신청해 빚의 대물림을 피할 수 있다. 그러나 법 규정을 알면서도 부모 빚 때문에 벼랑으로 몰리는 자녀들을 자주 본다. 직장을 잡아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는데, 평소 친하게 지내던 이웃이나 친지가 찾아와서 “내가 빌려준 돈으로 학교를 다녔으니 수혜자인 네가 갚으라”고 한다. 가까운 사람들이 더 심하게 나오는 경우가 많다. 부모가 살아있더라도 “이제부터는 네가 갚으라”고 강요해 빚보증을 서게 하는 사례도 종종 나타난다.
부모가 빌린 사채로 학비를 충당했다고 해도 자식이 갚을 의무는 없다. 부모에게 빌려준 돈에 자식을 구속시키는 것은 ‘개인책임 원칙’에 반한다.

4.드라마 : 사채 빚에 쩔쩔매는 교사
현실 : 공무원 파산선고 시 해직 위험

여자 주인공 서주희(박진희 분)의 아버지가 교사인데, 빚을 갚지 못해 어쩔 수 없이 퇴직하고 주유소에서 일하며 돈을 번다. 실제로 공무원이나 교사들은 스스로 파산 신청하는 것을 주저한다.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파산 선고를 이유로 채무자를 차별하지 못하도록 규정돼 있으나, 막상 개별 법률에 의해 ‘파산 선고 시 공무원이나 사립학교 교사의 직을 잃는다’고 보는 해석이 유력하다. 이 경우 5년간 월급에서 생계비를 뺀 나머지를 갚고 남은 빚을 탕감받는 개인회생제도를 이용하는 방법이 있다.

그럼에도 명예를 중시하는 경향이 강한 직종이어서 그런지 사표를 내고 퇴직금을 탈탈 털어 빚을 갚는 경우가 종종 있다. 공무원과 교사의 퇴직연금은 어떤 명목으로도 압류할 수 없는 재산인데 퇴직일시금을 받아 빚을 정리하기도 한다.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빈곤의 악순환에 빠지는 것이다. 의사ㆍ간호사ㆍ약사 등 의료인은 파산 선고로 자격에 영향을 받지 않도록 하는 법 개정안이 지난 3월 국회를 통과했다.

5.드라마 : 18% 이자만 받는 사채업
현실 : 실제로는 그런 업자 없어

주인공의 옛 여자친구 이차연(김정화 분)이 사채업을 하는 할머니에게서 사업자금을 받아 18%의 이자를 받는 사채업을 시작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런 사채업자는 존재하기 어렵다. 신용카드 회사의 현금서비스, 상호저축은행의 대출금리가 18%대에 이르고 그 이상인 경우도 있다. 이들 제2금융권에서 대출을 거절당한 사람들이 사채로 눈을 돌린다. 사채업자 입장에서 이들에게 18%로 사채를 놓는 것은 망하는 지름길이다.

‘연리 18%’의 의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월금리로는 1부5리. 내 경험으로 볼 때 18%가 넘는 이자율을 쓰는 사람들에겐 희망이 없다. 단기간에 고수익을 올리는 사업이 아니라면 이자를 내고 이익을 내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자금조달에 문제가 생겨 18% 이상의 사채를 빌릴 수밖에 없다면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이나 파산제도와 같은 구조조정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

시장경제에선 실패자가 생기게 마련이다. 현대 법치국가는 파산제도를 통해 인생 대차대조표를 새로 쓰고 ‘패자부활전’에 나설 수 있는 길을 터주고 있다. 사회 통합을 위해선 채권자와 채무자 모두 타협하고 절충하는 테크닉(기술)을 터득할 필요가 있다.

김관기 변호사 김박 법률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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