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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신」(분수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조선조 영조때의 실학자 성호 이익은 정치이론에 관하여 탁월한 식견을 가진 사람이었다. 특히 붕당정치나 당쟁에 관한 그의 이론은 오늘날까지도 귀감으로 꼽히고 있다. 『성호잡저』를 보면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온다.
「지금 열사람의 굶주린 사람들이 한그릇의 밥을 같이 먹는다고 하자. 다 먹기도 전에 싸움이 일어날 것이다. 왜 싸우느냐고 따지면 언사가 불순했다든가,태도가 건방지다든가 여러가지로 말할 것이다. 그러나 싸움의 원인은 언사나 태도나 동작에 있는 것이 아니다,밥그릇이 하나라는데 있는 것이다. 만약 열사람에게 한상씩 대접한다면 점잖게 잘 먹고 일어날 것이 아니겠는가.」
그는 모든 당쟁의 원인은 관직은 한정돼 있는데 그 자리를 차지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많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크거나 작거나간에 정치적 변화가 일어나게 되면 새로이 권력자나 실력자가 되는 사람은 전부터 그를 따르던 사람들을 중용하게 마련인데,그 사람들을 모두 기용할 수 없게 되니까 분당과 파당 현상이 생기게 된다는 것이다.
예부터 정치적 실력자가 되기를 꿈꾸는 사람들은 휘하에 많은 추종자들을 거느렸다. 「가신」이란 본래 정승의 집안일을 돌보던 사람들을 일컬었으나 득세하기 전의 추종자들도 「가신」이라 불렀다. 등극하기 전의 수양대군과 실권을 잡기 전의 흥선군이 좋은 예다. 추종자들은 목숨까지도 내던질 태세가 되어 있으므로 「모시는 분」이 득세하는 경우 응분의 보상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성호의 말대로 늘 자리는 적고 경쟁자는 많기 때문에 모든 추종자들을 고루 만족시키지 못하는데서 문제가 발생한다. 붕당·세도·족벌정치가 판을 치게된 중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도 거기에 있다.
현대사회에서 정치적 의미의 「가신」이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오랜세월동안 상도동과 동교동을 드나들면서 그들의 정치적 「보스」를 보필하던 정계인사들을 언론들은 「가신」이라 부르고 있다. 차기대통령은 그들을 어떻게 대접하느냐가 고심이며,「보스」를 잃은 동교동측 인사들은 그 후광을 어떻게 받느냐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는 것이다. 어느쪽이든 「인사의 묘」가 문제다.<정규웅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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