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초부터 소설『명당』표절 문단 "강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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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한 작가의 삶과 사유, 그리고 기량의 응어리인 문학작품이 공공연하게 도둑 당하고 있다. 지난해「오늘의 문학상」「작가세계문학상」등 주요문학상 수상 소설들이 표절시비를 불러 일으킨 데 이어 새해 들어 신춘 문예 당선소설이 표절로 판명돼 당선이 취소되고 지난해 말 대대적인 광고와 함께 출간돼「낙양의 지가」를 올리려던 한 장편이 여러 중진작가들의 작품을 짜 맞춘 것으로 들통나 문단을 아연케 하고 있다.
93년도 세계일보 신춘문예는『빼어난 묘사력, 정확한 문장이 돋보이는 수작』이란 평과 함께 김가원씨(26)의『떠난 혼을 부르다』를 단편소실 당선작으로 발표했다. 그러나 재심결과 이 작품이 중견작가 오정희씨의 작품『파라호』『어둠의 집』『불의 강』등에서 베낀 부분 부분이 발견돼 당선을 취소했다.
『피를 말리 듯한 각고로 얻어진 남의 문장을 어떻게 그렇게 허락도 없이 쉽게 차용할 수 있다는 것일까. 이런 것을 두고 혼성 모방이니 포스트모더니즘이니 하는 소리를 갖다 붙인다는 것도 언외의 일일 것이다』는 게 심사위원들의 당선취소이유다. 이 같은 신문사나 심사위원들의 명명백백한 조치는 전년도 표절 시비가 일었던 문학상 관계자들과 비교할 때 한층 값진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명당의 숨결을 찾아 파란의 70평생을 산하에 바친 노풍 수사의 살아 있는 전설』이란 광고와 함께 전5권 예정으로 지난해 12월20일 1권이 나온 이우용씨(34)의『명당』(홍익출판사 간)도 인물·구성·문장 등 소설 거의 전부를 여러 중진작가의 작품에서 짜 맞춘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총6장 2백97쪽으로 된 1권 2, 3장 1백3쪽은 1983년 조정래씨가 펴낸 장편『불놀이』에서 따왔다.
『굳이 이유를 캐자면 그 음성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가성 같기도 하고, 어쩌면 본래 그런 것 같기도 한 음성-한 음, 한 음이 똑똑 끊어지면서 전혀 감정의 높낮이가 없는 말』(『불놀이』75쪽)
『굳이 이유를 캐자면 그 음성 때문이라고 할 수 있었다. 어쩌면 가성 같기도 하고, 어쩌면 본래 그런 것 같기도 한 음성…. 매끄럽기는 해도 한 음, 한 음이 또박또박 끊어지면서 전혀 감정의 높낮이가 없는 그런 음성』(『명당』 82쪽)
『명당』2, 3장은 위와 같이『불놀이』에서 문장을 군데군데 옮겨왔다.
또 4장「지리산 천왕봉」에서는 이청준씨가 10여 년 각고 끝에 89년 발표한 장편『자유의문』중에서 지리산 묘사부분을 토씨하나 바꾸지 않고 그대로 따왔다. 뿐만 아니라 사건의 발단, 인물·구조자체도『자유의 문』과 비슷하다. 이밖에도『명당』은 김원일씨의『노을』, 김정빈 씨의『단』등 많은 기존의 작품에서 짜깁기했음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문학박사·문학평론가이자 건국대 국문과강사로 있는『명당』의 작가 이씨는 표절이 드러나자 작가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하며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밝혔다. 표절 당한 이청준씨는 『베껴도 괜찮다, 혹은 모를 것이다』며 행한 표절행위는 그 어느 쪽도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고 밝혔다.
조정래씨도『문학 평론한다는 사람들이 왜 이렇게 지식인·문단사회에 창피를 주는지 모르겠다』며『법적 절차를 밟아서라도 이러한 부도덕·비양심적 표절행위에 경종을 울릴 것』을 분명히 했다. <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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