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당선소감 고두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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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깊은 것은 어디서나 믿음이 됩니다.
늘 가슴속에 찰랑거리던 남해 바다.
유년시절의 물밑에는 배고픈 기다림과 함께 만주 송화강가에서 팔뚝 걷고 투망 하던 아버지의 전설이 고막조개처럼 엎디어 있었습니다.
가끔씩 적조가 들어 미역이며 갈파래 등 이 온통 팔 내저으며 몸살 앓는 밤에도 어김없이 썰물 뒤로는 밀물이, 그리움 끝엔 기쁨이 물 때 맞춰 찾아온단 믿음 있었습니다.
남해 섬 옆구리께 에 노도라는 작은 섬이 달려 있습니다. 갈매기 같은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는데 한때까지는 겨울 한 철 동백꽃만 빨갛게 피어났던 무인도였다고 합니다.
이 적소의 섬에 유배 왔던 김만중을 꿈에서 보았습니다.
바다 건너 사람의 마을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을 혼자 바라보며 밤새도록 가슴 훑었던 그 슬픔의 깊이 미처 다 알지 못하지만 적막 속에 그가 가졌던 태산같은 그리움이나 외로움의 물굽이들 너무 선명하여, 생각해 보면 그토록 많은 기다림 저편으로부터 우리도 모두 유배와 있습니다.
어둠 짙은 세상에 사랑할 것이 많다는 건 참으로 역설적인 뉘우침입니다.
지난해 구기동 산자락을 처음 밟았을 때도 그랬습니다.
막막하던 바람과 잡풀들, 그사이로 손 뻗어 담을 재고 터를 닦고, 쑥 뿌리에 뼈마디 쓰라린 관절 뚝뚝 분질러 넣으며 흙 차지게 비벼 집이란 걸 이루었습니다.
그리고 첫 번째 겨울. 늦잠 꼴에 물소리 같은 당선통보를 받았습니다. 자그맣고 별로 빛나 보이지 않는 집 뒤로 눈부신 이마를 끄덕이며 북한산이 하얗게 웃어 주었습니다.
이제 대지 위에 새 집을 지어야 할 때입니다.
넓고 풍요로운 터를 주시고 힘주어 기둥 하나 밀어 올릴 용기 주신 중앙일보와 심사위원 님께 감사드리며, 더욱 밝고 빛나는 문학의 집 짓는 일로 오로지 기쁜 땀 흘리겠습니다.

<약력>
▲63년 경남 남해 생
▲경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한국경제신문 편집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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