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를 아버지라 부르게 되면서...

중앙일보

입력

또 한해가 저물어갑니다. 하룻밤 자고 나면 스물·서른·마흔...

십대와 이십대에는 어서 빨리 서른이 되고 마흔이 되고 싶으셨던 분 계실겁니다. 권위적인 부모님, 짓누르는 시험의 압박, 중심을 잡기 힘든 이 시기가 지나고 서른이 되면 꿈꿔왔던 모든 것이 이루어지고, 무엇이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가 있고, 자신의 삶이 어떤 길로 나아가는지 눈에 보일 듯 했습니다.

하지만 떨어지는 감 마냥 저절로 얻은 나이는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고민의 종류는 다르겠지만 여전히 머리속을 어지럽히는 문제로 가슴이 답답하고, 내일이 안 보이는 생활도 계속되죠.

이정도나마 알게되는 것도 다 세월의 경험이 가져다준 삶의 지혜일까요?

그리고 또 하나. 세월은 아빠·엄마를 아버지·어머니라 부르게 하면서 어린 나이론 감당할 수 없었던 당신들의 삶의 모습과 생각을 이해하게 해 줍니다.

심심이 유머게시판에 아이디 '수호월천'님이 올린 <아버지>란 게시물은 바로 이런 세월과 경험의 지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 네살때 아빠는 뭐든지 할 수 있었다.

* 다섯살때 아빠는 많은 걸 알고 계셨다.

* 여섯살때 아빠는 다른 애들의 아빠보다 똑똑하셨다.

* 여덟살때 아빠가 모든 걸 정확히 아는 건 아니었다.

* 열살때 아빠가 어렸을 때는 지금과 확실히 많은 게 달랐다.

* 열두살때 아빠가 그것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건 당연한 일이다. 아버진 어린시절을 기억하기엔 너무 늙으셨다.

* 열네살때 아빠에겐 신경 쓸 필요가 없어. 아빤 너무 구식이거든!

* 스물한살때 우리 아빠말야? 구제불능일 정도로 시대에 뒤졌지.

* 스물다섯살때 아빠는 그것에 대해 약간 알기는 하신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오랫동안 그 일에 경험을 쌓아 오셨으니까.

* 서른살때 아마도 아버지의 의견을 물어보는 게 좋을 듯하다. 아버진 경험이 많으시니까...

* 서른다섯살때 아버지에게 여쭙기 전에는 난 아무것도 하지 않게 되었다.

* 마흔살때 아버지라면 이럴 때 어떻게 하셨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한다. 아버진 그만큼 현명하고 세상 경험이 많으시다.

* 쉰살때 아버지가 지금 내 곁에 계셔서 이 모든 걸 말씀드릴 수 있다면 난 무슨 일이든 할 것이다. 아버지가 얼마나 훌륭한 분이셨는가를 미처 알지 못했던 게 후회스럽다. 아버지로부터 더 많은 걸 배울 수도 있었는데 난 그렇게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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