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역사 교육장' 헤이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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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25일 네덜란드 헤이그. 쌀쌀한 바람이 불고 종일 비가 내린 이날은 이준 열사 일행이 나라를 구해 보자는 일념으로 헤이그에 도착한 지 꼭 100년이 된다. 일행의 자취를 찾아 이곳 저곳을 둘러봤다.

당시 일행이 내렸던 HS역 내부는 현대식으로 고쳐졌지만 바깥 모습은 그대로다. 일행이 묵었던 드종 호텔은 역에서 걸어서 5분 거리다. 호텔은 한국인 교민 부부가 1995년부터 '이준 열사 기념관'으로 운영 중이다. 2층에는 열사 일행의 행적 및 만국평화회의와 관련된 각종 자료가 보관돼 있었다.

일행의 첫 외교활동이 이루어졌던 곳은 만국평화회의 부의장 드보포의 집이었다. 일행은 그에게 만국평화회의 참가허용을 요청하는 호소문을 전달했다. 그 집의 벨을 눌러봤다. 나온 사람에게 한국 역사에 의미 있는 곳이라며 둘러보도록 해 달라고 했지만 그는 거절했다.

당시 일본 대표가 묵었던 '호텔 데 쟁드'는 지금도 최고급 호텔 가운데 하나다. 점령국 일본 대표가 머무른 으리으리한 호텔과 식민지 외교관이 묵은 삐걱거리는 나무 계단의 초라한 호텔을 비교하니 당시의 서러운 현실이 그대로 전해져 왔다. 대표단이 당시 기자단에 당당히 우리의 입장을 밝혔던 프레스센터는 지금 한 회사 건물로 변했다. 이준 열사가 순국한 뒤 긴급 기자회견이 열렸던 곳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평화회의가 열렸던 상원 국회의사당 앞. '초대받지 못한 손님'이었던 대표단은 회의장 문앞에서 입장을 제지당하자 울부짖으며 호소문을 읽어 내려갔다. 굳게 닫혀 있는 상원 의사당의 커다란 문이 당시의 울분을 삭여야 했던 대표단의 심정을 말해주는 듯 보였다. 이준 열사의 당시 외교활동은 을사늑약으로 한숨 짓던 우리 민족에게 용기를, 외면하던 국제사회에는 뜨거운 민족의 함성을 전한 의미 있는 사건이었다. 100년 후 돌아본 헤이그에는 당시 대표단의 우국충정과 나라 없는 민족의 좌절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다음달 13, 14일 이곳에선 이준 열사 순국 100주년 기념 행사가 다채롭게 펼쳐진다. 해마다 여름이면 유럽을 찾는 한국의 수많은 여행객이 올해는 헤이그를 찾으면 어떨까. 여기서 우리 현대사의 굴곡을 느낀다면 여행은 더욱 소중한 기억으로 남을 텐데 말이다.

전진배 특파원 헤이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