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북 일본인 정치범 수용소서 노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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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미사일과 재래식 무기 수출과 관련한 비밀정보를 갖고 있는 국가안전보위부(우리의 국가정보원 격) 핵심 요원이 탈북해 한국행을 희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특히 '납북된 일본인들이 정치범 수용소에서 노역을 하고 있다'고 진술해 한.일 정보 당국이 사실관계 파악에 나섰다.

27일 정보 소식통과 지원단체에 따르면 박명철(39.사진)씨로 알려진 북한 보위부 간부는 올 1월 중국으로 탈북한 뒤 이달 동남아의 한 국가에 도착해 한국 입국을 위한 절차를 밟고 있다. 박씨는 보위부에서 대외 보안을 담당하는 부서에서 소좌(우리의 소령)로 일했다.

박씨는 피랍탈북인권연대 도희윤 대표와의 면담에서 "북한에 1. 4. 5. 8. 18. 22호 등 6개 정치범 수용소가 운영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두 곳의 수용소에서는 특수무기 생산이 이뤄지고 있다"며 "(핵 개발을 위한)우라늄 광산에서의 채취 작업에도 이들을 동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2003년께 업무차 북부 양강도에 있는 한 정치범 수용소를 방문했을 때 보일러공으로 강제 노동을 하던 납북 일본인을 목격했다고 말했다. 박씨는 "친분이 있는 수용소 관리자로부터 일본인 납치자가 3~4명 더 수용돼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박씨는 지난해 7월까지 북한 흥남 항(함남 함흥 시)에서 선박 출입을 통제하는 '책임검수'를 맡았다. 박씨는 "무기 수출은 기계부품으로 위장해 이뤄졌다"며 "주로 중동.아프리카 국가와의 거래였다"고 말했다. 또 "미사일 수출은 오전 1~2시쯤 일반 노동자를 모두 내보낸 뒤 호위사령부(김정일 경호 부대) 소속 노동자들이 선적 작업을 했다"며 "삼엄한 경계를 한 것은 물론 인공위성이나 카메라에 노출되는 걸 막기 위해 전파 방해 차량까지 배치했다"고 설명했다.

고아 출신인 박씨는 17세 때 보위부 양성 후보자로 선발돼 보위부 산하 훈련소와 대학을 마친 뒤 실무에 배치됐다. 그는 지난해 7월 자신의 부대와 다른 특수부대 사이의 무력충돌이 벌어진 뒤 평양으로 압송돼 조사를 받았으며, 11월 전역했다.

박씨는 18일 쓴 자필 서신(사진)에서 "보위부 복무를 마치고 고향 청진에서 인민들의 비참한 생활을 보며 희망이 없음을 깨달았다"며 "하루빨리 대한민국의 품으로 가고 싶다"고 말했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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