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입시 너무 쉬워도 문제(사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10년간 실시되어 왔던 현행 대입학력고사가 막판에 와서 진통을 겪고 있다. 3백점 이상의 고득점자가 무더기로 쏟아지면서 변별력이 상실된 출제가 아니냐는 비난마저 일고 있다. 높은 점수를 받고도 탈락하는 입시생으로서는 허탈감에 빠질건 당연하다.
아직은 고득점자의 숫자가 정확히 산출되지도 않은 형편이어서 이번 대입시험에 대한 종합적 평가를 내리기에는 너무 이르다. 다만 입시가 끝난 당일부터 문제가 너무 어렵다느니,너무 쉽다느니해서 입시 전문기관들마저 엇갈린 분석을 하더니 막상 채점결과가 나오면서부터는 지나치게 쉬웠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참고로 지난해 3백점이상의 고득점자가 1만2천명이었음을 감안한다면 올해의 예상치인 2만명내지 3만명이라는 숫자는 너무 높다. 지난해의 고득점자 수가 전체 입시생의 2%였다면 올해는 3.3내지 5%를 차지하게 된다. 원래 출제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80점대 이상이 5%를 차지하고 평균점수가 60점이 된다면 가장 이상적인 출제경향이었다고 낙관할 수 있다. 또 문제가 쉬우면 과외를 잠재우고 고교교육을 정상화시키는 교육 본래의 효과를 얻는다는 장점도 있다.
그러나 보다 미시적으로 관찰한다면 고득점자간의 변별력이 너무 낮아 약간의 실수나 채점자의 실수같은 작은 우연이 크게 작용할 소지가 생겨난다. 이번에 문제가 된 영어고사 주관식 8번문제처럼 정답이 모호한 경우 부분점수를 주느냐,안주느냐로 합격·불합격이 좌우되는 아슬아슬한 곡예를 하게 된다. 따라서 올해 대입시 문제에 대한 평가는 고득점자간의 난이도 조정에는 분명히 문제점이 있다. 그러나 출제의 원칙과 교육적 효과라는 큰 테두리에서는 그렇게 호들갑을 떨 일은 아니다.
문제는 내년부터 실시될 대학수학능력시험에 있다. 수학능력시험이 금년처럼 너무 쉽게 출제되면 대학 본고사가 어려운 출제를 하게 될 것이고 이에 따라 수험생 모두가 대학 본고사에만 열중하면서 새로운 고액과외의 열풍에 휩싸이게 될 위험이 있다. 여기에 새 제도에 대한 불안감마저 편승해 더할나위없는 불안과 혼란이 일 수 있다.
지금까지 6차에 걸친 모의시험결과는 예상밖으로 성적이 저조하기 때문에 터무니없이 출제가 쉬워지리라고는 보지 않지만 난이도의 조정과 학교교육의 정상화라는 두 축을 어떻게 조정할지 세밀한 연구와 실험이 계속돼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선 국립교육평가원이 문제은행의 운영을 보다 효과적으로 실시해야 하며 자체 출제의 능력을 배양하는 기능을 극대화해야 할 것이다.
대학입시에 대한 과민한 반응과 교육의 정상화를 위한 새 제도의 갈림길이 내년의 새 입시제도와 깊은 관련이 있음을 교육당국은 재인식하고 만반의 준비를 갖춰야 할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