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사기범죄(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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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얼마전 세계 10대 선진국 재무장관회담에선 좀 별난 의제가 등장했다.
컬러복사기에 의한 위조지폐 방지대책이 거론된 것이다. 여러나라에서 고성능 복사기를 이용한 지폐위조 범죄가 늘고 있으니 유명복사기 메이커들도 방비책을 세워야 한다고 촉구하는 회의장이 되고 말았다.
작년 미국에서 검거된 위조지폐범 2천명 가운데 컬러복사기를 악용한 경우가 전체의 4분의 1인 4백50명이나 된다.
독일에서는 2백마르크(한화 약 11만원)의 새 화폐가 나온지 며칠만에 복사기 위폐가 나돌아 비상이 걸렸다. 영국의 경우도 전체 위조지폐의 15%가 컬러복사기에 의한 범죄였다.
복사기 기술이 가장 발달한 일본에서는 달러화 뿐만 아니라 엔화위조·마권위조·수입인지나 심지어는 주차허가증 위조까지 끊이지 않고 있다.
이같은 위조소동의 책임은 1차적으로 복사기 메이커들에 돌아갔다.
복사기안에 위조가 불가능하도록 방지조치를 해야할 것 아니냐는 여론에 몰리고 있다. 디지틀 컬러복사기가 개발되면서 해상도가 높고 2백56단계까지 색깔 조합이 가능해 지폐의 미세한 부분까지 정교하게 재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문 국제위조단에 의한 필름판의 제작과 인쇄과정도 필요없게 되었다.
각 메이커들이 강구하고 있는 위조방지책은 세계 주요 지폐의 특징을 기억시켜 이를 복사할 경우 새카맣게 나오도록 하는 인식기술의 개발과 복사기에 눈에 보이지 않는 암호를 넣어 유가증권 및 여권위조범을 추적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 등이다. 이와 함께 각국 중앙은행들의 지폐 인쇄에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는 것이다.
한국은행은 94년부터 신화폐의 전면에 부분노출 은선 등을 넣으며,일본은행은 내년부터 이와 비슷한 방법으로 자외선에 반응하는 특수잉크를 사용해 돈을 찍어 내기로 했다. 그러나 문제는 위조단이 위폐방지기능에 맞서는 새로운 기술을 착안해 내면 어떻게 하느냐는 것이다.
첨단기술의 개발은 우리의 생활에 편익을 주는 대신 끊임없이 새로운 불안요소도 만들어내고 있다.<최철주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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