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대통령은 사단장, 대학총장은 졸병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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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노무현 대통령이 어제는 대학 총장들을 청와대로 소집해 훈계와 협박을 했다. 교육부가 만든 입시 가이드라인을 지키지 않으면 ‘상응한 조치’를 하겠다고 했다. 총장들의 이야기를 듣겠다던 자리였지만 대학 총장들이 아무리 입을 모아 잘못을 지적해도 듣지 않는 독단적인 모습을 보였다. 한국 지성들을 모아 놓고 일방적 협박과 조롱만 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세계에 이런 나라가 또 있을까?

 노 대통령은 툭하면 ‘맞짱 토론’을 하자고 한다. 그렇지만 한번도 제대로 토론을 한 적이 없다. 취임 초 ‘참여 민주주의’라는 화려한 구호를 내걸고 젊은 검사들을 불러 토론을 한다고 했지만 결국은 “막가자는 거냐”고 협박하는 것으로 끝났다. 그 뒤로도 한번도 ‘계급장’을 뗀 진솔한 대화를 보여 준 적은 없다.

 어제 자리도 겨우 일주일 전 총장들에게 참석을 강요해 마련했다. 교육부가 다른 일정이 있는 사람까지 참여를 독촉했다고 한다. 그렇게 끌어 모아 놓고는 다른 의견을 용납하지 않았다. 일부 이견을 제기한 총장들은 직접 면박했다. “여러분들은 성공한 사람이다. 성공한 사람들이 그러면 안 된다”고 했다. “서울대는 자존심이 걸려 버린 것 같은데…서울대 자존심이면 어쩔 수 있겠나”라며 비아냥댔다. “정권이 바뀌면 정책이 바뀌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다”고 했다. 정권을 초월한 제왕적 대통령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대통령의 뒤틀린 인식과 표현이다. 그는 능력 있는 사람이 주요 직책을 맡는 것을 기회 균등을 파괴하는 것으로 몰아갔다. 더구나 그는 주요 직책을 ‘완장’이라고 불렀다. ‘완장’이라면 625 전쟁의 슬픈 역사에서 나온 말이 아닌가. 인민군이 기득권 세력을 때려잡기 위해 능력을 따지지 않고 완장을 채워 줘 위세를 부리게 하고, 억울한 희생자들을 양산해 냈다. 느닷없이 노 대통령이 ‘완장’을 들먹이는 게 능력에 따라 주요 직책을 차지하는 제도가 못마땅하다는 말인지, 그런 체제를 뒤집어엎자는 뜻인지 매우 불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