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인사대천명(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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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동양사람은 서양사람에 비해 운명론에 다소 약한 편이다. 특히 한국사람이 그렇다. 운명을 미리 내다보고자 하는 여러 종류의 민속신앙이 발달한 까닭도 거기에 있다. 모든 자연현상이나 사람의 일은 이미 정해져 있으므로 사람의 힘으로는 어쩌지 못한다는 체념적 인생관에 깊이 빠져있는 것이다. 「나의 사전에 불가능이란 없다」는 나폴레옹황제의 유명한 말이나 「운명아,길 비켜라,내가 간다」는 서양사람들의 호언에 견줄때 운명에 대한 한국사람들의 체념주의 내지 순응주의는 크게 대조적이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운명에 대한 체념이나 순응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태도로 자신에게 닥쳐오는 운명을 받아들이느냐에 있다. 절대적 운명론자들은 아무런 대비책도 마련하지 않은채 그 운명을 저주하고 한탄하는 태도로 일관하게 마련이지만,운명을 극복하고자 애쓰는 사람들은 그 결과야 어떤 형태로 나타나든지간에 최선을 다해 운명과 맞서고자 하는 태도를 보인다.
운명에 맞서려는 노력이 중요한 까닭은 그것이 운명이 결정된 이후의 삶에 적지않은 영향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최선을 다했으므로 후회할 일이 없으며 결과에 승복한다는 얘기다. 그것을 중국사람들은 「진인사대천명」이라 했다. 송나라 때의 유학자인 정호·정이형제(정자)가 『초학여요』의 「지명」조에 남긴 말로써 할수 있는대로 최선을 다한 후에 모든 것을 하늘의 뜻에 맡긴다는 것이다.
다른 측면에서 생각해 보면 이 말은 「결과보다는 과정이 중요할 수도 있다」는 뜻으로도 풀이된다. 눈앞에 다가온 대통령선거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당선하거나 낙선하거나 운명으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겠지만 최선을 다한 사람들과 최선을 다하지 않은 사람들이 그 결과를 받아들이는 태도에는 큰 차이가 있을 것은 분명하다. 최선을 다한 사람들은 설혹 낙선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자신의 운명이거니 생각하겠지만 최선을 다하지 않은 사람들은 그 결과에 쉽사리 승복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정치에서도,선거에서도 스포츠처럼 페어플레이정신을 가지고 「승패는 병가지상사」로 받아들이는 허심탄회한 자세가 바로 민주주의의 요체임을 알아야 한다.<정규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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