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시론

6·25에 생각하는 6·15 축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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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6·15 ‘민족통일대축전’이 끝난 지 며칠, 마침 오늘은 6·25 발발 57주년이다. 남북 화해의 상징인 2000년 남북 정상회담 이후 매년 6월과 8월 민족통일대축전이 개최됐다. 축전의 취지는 ‘6·15 공동선언을 지지·환영하며, 그 실천을 위한 민족적 결의를 모으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개최된 축전은 긍정적인 평가를 받지 못한다. 북한의 약속 위반과 상식 이하의 행동 때문이다.

지난 7년간 개최된 축전에서 북한은 수많은 약속 위반을 했다. 대표적인 것이 최근 평양에서 개최된 6·15 7주년 축전 때의 ‘주석단 지정좌석 바꿔치기’ 사건이다. 통상 남북 간의 행사에서 주석단의 좌석 배치는 사전 실무회의를 통해 정해진 ‘지정좌석제’다. 축전 개막식과 환영 만찬에서 한나라당 박계동 의원을 비롯한 주빈들은 남북 합의에 따라 주석단의 지정좌석에 앉았다. 물론 실무자들의 충분한 사전 점검이 있었다. 그러나 축전의 본 행사인 ‘민족단합대회’가 열리기 바로 전 남측 실무자의 주석단 좌석 배치 확인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다. 북측이 주석단 앞줄에 있는 한나라당 박계동 의원의 명패를 남측의 동의 없이 몰래 뒷줄에 갖다 놓은 것이다. 이를 발견한 남측 실무자는 북측에 강력한 항의와 함께 명패의 원상복구를 요구했다. 그러자 행사장은 순식간에 고성이 오가면서 난장판이 돼 버렸다. 행사 실무자와 지도부 간에 나름대로의 해결 노력은 있었으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결국 ‘좌석 바꿔치기’라는 북한의 웃지 못할 행동으로 ‘민족단합대회’는 이틀 후로 미루어만 했다. 

또 다른 사례로 ‘노래 가사’ 소동도 있다. 이 소동은 2004년 인천에서 개최된 6·15 4주년 축전 때 발생했다. 남북 간의 예술공연도 사전 실무회의를 통해 공연 제목과 내용을 조정한다. 남측은 ‘백두와 한라는 내 조국’이라는 북측 노래 가운데 제2절 ‘태양조선 하나되는 통일이어라’의 가사가 국민정서상 공연의 어려움을 지적하면서, 제1절 ‘삼천리 하나되는 통일이어라’의 연창을 북측에 요청했다. 북측은 여러 가지 전제조건을 내세우다 결국 남측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실제 공연에서 북측은 ‘태양조선 하나되는 통일이어라’를 제창해 버렸다. 북측이 약속을 위반한 것이다. 결국 남측의 항의와 북측의 책임전가로 다음 행사들이 줄줄이 지연됨으로써 만찬행사가 새벽에 끝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남북 간 행사에 북측의 약속 위반은 웃지 못할 소동으로 이어진다. 함께 웃어야만 하는가? 그것이 남북관계 발전에 도움이 된다면 더욱 크게 웃어야 한다. 그러나 북측의 상식 이하의 행동이 정략적 의도를 가진다면 남북관계 발전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그렇다면 약속 위반에 대한 북한의 의도는 현장에서든 사후든 더욱 철저히 파악·분석해야 한다. 주석단 지정좌석 바꿔치기는 한나라당과 밥은 같이 먹되, 위원장(김정일)과 인민들이 주시하는 ‘민족단합대회’는 같이하지 않겠다는 의도다. 또한 본 행사에서 사건을 확대해 남남분열을 야기시키고, 나아가 한나라당을 고립시켜 반 보수연합을 구축하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노래 가사 소동은 북측을 향해 ‘태양’인 김정일 위원장에게 무한한 충성심을 보이고, 남측을 향해 ‘통일지도자’로서 김 위원장의 이미지를 자연스럽게 전파하려는 의도로 파악된다.

민족통일대축전에서 나타난 북한의 의도는 대단히 정략적이다. 이러한 정략은 화해와 협력, 민족단합이라는 6·15, 8·15정신과 양립할 수 없음을 북측은 알아야 한다. 남측도 북측의 정략적 의도를 알면서도 그냥 질질 끌려다니는 자세를 버려야 한다. 앞으로 북측의 일방적인 행사 연기나 약속 위반, 내정간섭 등 잘못된 언행은 그 자리에서 분명한 경고와 사과, 재발 방지를 요구하는 보다 확고한 남측의 자세를 기대한다.

양무진 경남대 북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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