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때 풀린돈/총통화량증가 영향 못미쳐/현금통화 비율만 일시 증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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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87년 대선땐 통화증발 “뚜렷”
선거때 돈이 얼마나 풀릴까.
이번 대통령선거에선 유난히 「금권선거」시비가 크게 일고 있어 더욱 관심거리다.
선거와 통화와의 관계는 쉽사리 잡히지 않는다. 다들 선거를 앞두고 당국이 돈을 푼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통계상으로 딱 떨어지지 않는다.
예를 들어 선심관광이나 식사가 대접될때 관련 정당이나 후보자는 아무래도 은행예금에서 현금을 찾아쓰게 된다. 따라서 그 전보다 상대적으로 현금통화 비율이 늘어나게 된다. 그러나 이 현금통화비율 증가가 곧바로 통화량 증가와 이어지진 않는다. 우리가 관리지표로 삼고있는 총통화(M2)에는 현금통화와 예금통화가 함께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음식점 주인이나 관광회사,여관주인도 대부분 받은 돈을 바로 은행에 넣지 쓸데없이 현금을 갖고 다니려 들지 않기 때문에 며칠 정도 현금통화 비율이 늘어났다가 다시 그전 상태로 되돌아간다.
요즘과 같이 10만원권 자기앞수표가 지폐처럼 많이 쓰일 때는 자기앞수표 발행규모를 나타내는 별단예금도 늘어난다.
선거를 앞두고 돈이 풀린다는 것은 정부가 선거 직전에 여러가지 사업을 벌이면서 재정집행을 앞당기거나 은행의 대출창구가 느슨해졌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선거는 계절적으로 자금이 넉넉한 편인 연말,연초에 치러졌다. 따라서 선거만으로 인한 정확한 통화증발의 규모를 지적하는데는 한계가 있다.
대통령선거를 치른후 통화증발 시비를 불러일으킨 대표적인 경우는 87년 12월16일 13대 대통령선거 때다. 이때 총통화는 전년동기대비 22.4%가 늘어났으며 11월에 비해서는 총통화가 무려 1조5천4백억원(평균잔액 기준)이나 늘어났다. 그해 한해 총통화 평균잔액 증가율 18.8%보다 3.6%포인트나 높은 수치다. 물론 당시 3저 호황탓에 국제수지가 흑자를 기록하면서 해외부문의 통화유입이 많았고 재정지출도 이달에 몰렸다지만 당국이 그만큼 통화가 늘어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조치를 제대로 안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선거전인 10월부터 석달동안 풀린 돈이 그해 공급된 전체 총통화의 35%에 이르렀다.
이듬해인 88년 12월 금리자유화를 앞두고도 많은 돈이 풀렸는데,그 이후 전년동기대비 몇% 이내로 통화관리를 하면서 돈을 풀다 보니 「상반기 돈가뭄,하반기 돈홍수」현상이 여태까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올 11월 총통화증가율이 관리목표(18.5%)를 넘어선 19.2%로 나타났지만,이는 총통화 계수에 잡히지 않던 양도성예금증서(CD)가 가짜 CD사건과 금융사고의 파문으로 유통시장이 마비되면서 총통화로 잡히는 다른 예금으로 빠져나가 전체 유동성에는 큰 변화가 없으면서도 총통화계수를 불렸기 때문이다. 12월에도 이같은 CD의 순상환은 계속되고 있어 당국이 통화관리 목표를 가급적 지키려고 노력하는 한 통화를 늘리기는 쉽지 않다.<양재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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