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영 정치자금 폭로설」로 재계비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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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전경련회장 지내 내막 잘알 것”/“구체적 물증 확보”엔 의문제기
대통령선거전의 관심이 현대라는 기업에 집중되는 비정상적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일부 계열사 휴·폐업소문이 나돌아 11일에는 정세영회장이 회견을 자청해 공식부인까지 했고,12일 서울 여의도 국민당유세에서 정주영후보가 폭탄선언을 한다는 예상 등으로 현대바람이 어지럽다.
○…정치자금의 한쪽끝을 잡고 있는 재계는 지난 77년부터 87년부터 전경련회장을 지낸 정 후보가 누구보다 「뒷돈」의 내막을 잘 알고 있는 이상 이번 대선후보가 포함된 「CY장학생명단」을 폭로할 경우 파문은 엄청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전경련을 비롯한 재계는 정 후보가 과연 정치자금을 폭로할지 애써 가능성을 부인하고 있다.
현대그룹 또한 많은 정치자금을 부담해온 이상 폭로로 인한 반사이익이 정 후보에게 모두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정치자금 루트가 워낙 은밀하므로 구체적인 물증을 확보했다는 정 후보의 주장에 대해서도 재계는 의문을 표시하고 있다.
다른 그룹들은 『폭탄선언은 다른 내용이고 이를 감추기 위한 유도성 발언』『대규모 유세에 청중을 끌어모으기 위한 애드벌룬』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정 후보가 다른 그룹의 정치자금을 폭로하면 재계와는 완전 적대관계에 접어들게 되므로 그동안 대기업들은 표면상 중립이나 친국민당으로 묶으려던 정 후보의 선거전략에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정 후보가 정치자금을 폭로할 경우 시기적으로는 3당합당이후 내용으로는 민자당과 김영삼후보에 넘어간 자금에 초점이 맞추어질 것으로 보인다.
시기적으로는 비오너 유창순전경련회장체제인 이 시기에 실질적인 정치자금은 5대그룹 회장단모임에서 조성됐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재계는 정 회장의 폭로가 있을 경우 초점이 이 루트의 반공개적인 정치자금에 맞추어져 있지 않겠느냐고 보고있다. 이에 대해 정 후보 자신이 은밀히 건네주고 스스로 물증도 갖고 있을 「현대그룹의 정치자금 내역」을 추가로 폭로하면 파문은 엄청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국내외기자 70여명이 몰린 11일 기자회견에서 현대 정세영회장은 일부 계열사의 휴·폐업설,고의부도설은 조작된 유언비어라고 공박했으나 전 계열사의 영업중지까지도 한때 검토했음을 시인했다. 기자회견에 앞서 열린 사장단회의는 『회사의 어려움이 너무 심하다』는 격앙된 분위기에서 일부 계열사의 휴·폐업쪽으로 가는 듯했으나 발표직전 『휴·폐업은 안한다』는 결정이 내려졌다. 사장단회의에서는 『주요 계열사 간부의 수배·구속으로 현대종합목재·현대중공업 등의 경영공백이 심해 회사문을 닫지 않을 수 없는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는 의견이 주류를 이룬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현대그룹이 이같은 극단론을 완화시킨 것은 자해성 조치가 『국민경제를 볼모로 정치적 쇼를 한다』는 비난여론을 일으켜 현대의 입지를 더 어렵게 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정부와 정보기관도 현대그룹이 금명간 몇개 회사의 이사회를 열어 휴·폐업신고를 낼 것 같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여러 채널로 만류와 경고를 보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 회장은 이날 『발표전 회의에서 휴·폐업을 검토하기도 했다』고 언급한뒤 『그러나 휴·폐업은 국가경제에 엄청난 타격을 줄 소지가 있는데다 휴·폐업으로 굴복하기보다 꿋꿋이 극복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고 결연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러나 정 회장은 『휴·폐업 검토가 사실인데 왜 발표문에는 「휴·폐업설이 낭설」이라고 표현했느냐』고 보도진에 따지자 『검토는 했지만 검토하고 있다고 외부에 발표는 안했으니 낭설아니냐』고 둘러댔다.<김일·이철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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