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로봇이야기

바퀴와 다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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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빨간 소방관 로봇 인형이 모터 소리를 내며 불자동차 사다리를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모습이 생각난다. 어린 시절 거리에서 봤는데 참 신기했다. 지금은 인간을 닮은 휴머노이드 로봇이 두 다리로 자연스럽게 걸어도 더 이상 크게 감탄하지 않는다. 진공청소 로봇은 작은 바퀴들로 아파트 방 구석구석 잘 돌아다닌다. 모두 당연한 것처럼 생각된다.

하지만 한때는 로봇에 바퀴를 달아야 하나, 아니면 다리가 있어야 하나 고민하던 시절이 있었다. 역설적이지만 바퀴나 다리 둘 다 다루는 기술이 미숙하던 때의 일이었다.

바퀴의 역사는 기원전 3500년께 메소포타미아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의 전차 바퀴가 가장 오래됐다. 2004년 화성을 탐사했던 로봇은 바퀴가 여섯 개였다. 보통은 네 개의 바퀴로 된 이동 로봇이 많다. 두 개의 앞바퀴로 움직이고 뒤에 작은 바퀴를 달아 방향을 조절하기도 한다.

2001년 12월 초 뉴욕 타임스는 새로운 개인 이동장치를 소개했다. 그러면서 지난 자동차 백 년 역사를 바꿀 새로운 운송장치라고 했다. 뭔가 새롭기는 하지만 그렇게까지 획기적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바로 '세그웨이'라는 제품이었다. 큰 두 바퀴 사이에 사람이 타는 판이 있고, 긴 조종간을 잡고 이동하도록 만들어졌다. 그동안 우여곡절 끝에 요즘 조금씩 시장에 알려지는 느낌이다. 주요 기술은 초소형 방향 인식센서가 장착돼 움직일 때 균형을 잡아 주는 것이다. 기존 기술로는 넘어질 것도 이 센서 덕에 약간 기우뚱할 뿐 다시 안정적인 자세를 잡는다. 이 기술은 로봇이 두 바퀴로 안정되게 신속히 움직이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하게 되었다. 필자는 우연히 독일의 마이크로 부품 제조회사를 방문했는데 바로 그 센서를 제조하고 있어 이것저것 물어봤다. 세그웨이는 국내에서도 팔리고 있다.

로봇 다리 개발 역사도 화려하다. 8, 6, 4, 2개, 심지어 다리가 하나뿐인 '스카이 콩콩'까지 나왔다. 한동안 묵직한 다리들이 딱딱하게 기계적으로 움직이다가 21세기 들어 인간처럼 두 다리로 부드럽게 걷더니 이젠 달리기까지 한다. 작은 장난감 로봇은 발바닥 부위를 무겁게 만들어 넘어질 일이 없게 만들기도 한다. 이처럼 바퀴와 다리 기술이 발전하면서 더 이상 고민할 일이 없는 듯하다. 평평한 곳에서 바퀴의 고속성과 울퉁불퉁한 곳에서 다리의 유연성 차이는 명쾌해졌다.

이제 또 다른 방식은 없을까? 있다. 바퀴와 다리를 갖고 있다가 바닥 상황에 따라 알아서 걷거나 굴러가는 로봇도 나왔다. 또 캐터필러라고 하는 무한궤도 방식도 있다. 거친 지면을 굴러가는 탱크처럼 군사 로봇에 이런 방식을 사용한다.

바퀴와 다리, 어느 방식이 우월할까? 필자의 생각엔 현재 그대로의 방식이 우월하다. 유신론자에게는 신의 섭리가, 무신론자에게는 오랜 자연의 진화법칙이 작용했다는 얘기다. 아파트에서는 바퀴가 효율적인데 인간에게는 바퀴라는 개념이 없다. 하지만 지구가 평평했다면 다리 대신 충분히 바퀴형이 됐을 가능성도 있다.

이러한 인간 또는 생물의 효율적인 기능을 모방하는 것을 생체모방이라고 한다. 큰 로봇에는 인간이나 동물의 특성을 모방하고, 작은 로봇에는 곤충이나 미생물을 관찰하여 장점을 모방하려고 한다.

작은 생물의 세계로 들어가면 매우 다양한 이동방식이 있음을 알게 된다. 물고기의 지느러미나 짚신벌레의 섬모운동, 정자나 올챙이의 꼬리운동, 아메바의 몸 전체 변형이동 등 헤아릴 수 없다.

더 작은 세계로 들어가면 그야말로 점입가경(漸入佳境)이다. 박테리아에 있는 편모는 회전운동을 한다. 생체 단백질에는 스키처럼 직선으로 미끄러지거나, 회전하는 단백질 분자도 있어 연구가 한창이다. 회전 단백질은 생체 나노 바퀴인 셈이다. 로봇 분야에서 할 일은 아직 무궁무진하다.

박종오 전남대 교수·기계시스템공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