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헌법소원 낸 대통령에게 헌법을 깨우쳐 주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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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선거 중립 의무를 어겨 선관위의 경고를 받은 노무현 대통령이 선거법이 대통령의 정치적 표현 자유를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냈다. 같은 경고를 세 번이나 받은 대통령이라면 근신.자숙하면서 법을 지키는 모습을 보여야 했다. 더군다나 헌재는 2004년 탄핵심판 때 대통령의 선거 중립 의무를 인정한 전례가 있으므로 대통령의 이번 행위는 일종의 오기 정치다.

헌법소원이란 공권력 행사로 기본권을 침해당한 사람이 제기하는 것이다. 헌법학자들 사이에선 선거법 준수를 요청한 선관위 결정이 공권력 행사인지, 공권력의 상징인 대통령이 피해자라 주장할 수 있는 건지에 대해 회의론이 적잖다. 헌재는 이를 따져 보고 대통령에게 헌법소원의 자격이 없다면 각하할 것이다. 그러나 설사 자격이 있다 해도 이는 대통령의 품격과 도덕적 정통성에 어울리지 않는다.

대통령은 위헌 또는 언어도단(言語道斷)적 행위를 했다가 법과 상식에 부닥치면 승복하지 않고 막무가내로 고집을 피웠다. 행정수도가 위헌 결정을 받자 행정중심 복합도시라는 변형으로 대처했다. 재신임 국민투표가 헌법에도 없다고 하자 한나라당과의 대연정으로 권력을 양보할 수 있다고 했다. 신문법이 부분 위헌을 받았는데도 기자실을 없애겠다는 또 다른 위헌적 행위를 들고 나왔다. 국민 다수가 그리 반대해도 개헌 발의를 추진했다. 이런 행위들은 잇따라 무고(誣告)형 소송을 내는 것과 비슷하다. 한마디로 떼쓰기 정치다.

많은 국민의 개탄 속에 대통령은 또다시 떼를 쓰고 있다. 이를 이성적으로 제어하는 일은 헌법재판소에 달려 있다. 헌재는 신속하고 엄정하게 결정을 내려야 한다. 헌법소원 자격이 없다면 바로 각하하고, 아니면 대통령의 선거 중립을 규정한 선거법 정신에 대해 헌법적 판단을 속히 내리라. 우리는 대통령의 선거운동 혐의에 대해 선관위가 우유부단한 입장을 취해 생긴 혼선을 목격하고 있다. 헌재는 이를 반면교사로 삼으라. 헌법을 거스르고, 헌법의 중요성에 대해 무지한 대통령에게 헌재는 분명한 가르침을 던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