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부양책 성급하면 곤란/박태욱 경제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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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86∼88년 두자릿수 성장의 대호황을 누리던 우리 경제가 89년 들어 성장률이 6%대로 급락하자 이른바 「총체적 위기론」이 거세게 일고 그 와중에서 정부는 결국 경제팀을 바꾸고 경제운용 방향을 성장위주로 돌리는 4·4 대책을 발표했다. 바로 그 시점 우리 경제는 조정단계를 거쳐 서서히 회복기미를 보이고 있었으며 실제로 4·4대책 발표를 전후한 GNP성장률은 1·4분기 11.2%,2·4분기에 10.6%라는 놀라운 것이었다.
수치로만 보아서는 경기활성화가 아니라 경기 진정대책을 써야할 시점이었다는 것이다. 경기가 돌아서는 마당에 펼쳐진 「실세금리 1% 이상 인하유도,특별설비자금 1조원 증액,건축규제 및 토지이용규제 완화,무역금융단가 인상」 등을 망라한 4·4대책은 90년의 성장률을 다시 9.3%로 끌어 올렸지만 87년 이후 경제성장률이 잠재성장률을 넘어서면서 생긴 우리 경제의 거품을 걷어내는 구조조정 작업을 결정적으로 지연시켰고 그 부담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번 3·4분기의 실질성장률 3.1%는 우리 정부가 아직도 정책의 미조정을 통한 적정성장으로의 연착륙할 능력이 없음을 다시 한번 보여줬다는 점에서 입맛이 매우 쓰다.
성장률이 급락하자 다시 경기부양 논의가 일고 재무장관은 이미 금리인하를 공공연히 시사하고 나섰다. 더욱이 연말 대선을 앞두고 모두가 정부의 경제실정을 비판하고 나서면서 정치논리가 이같은 경기논쟁에 비집고 들어오는 기미마저 보이고 있다.
경제는 선택이고 현 시점에서 부양책을 쓰지 말라는 법은 없다. 하지만 정부의 잘못된 정책운용에 의해 고통이 증대됐긴 하지만 그동안 겪은 고통,이에 따라 어느 정도 가닥을 잡은 안정기반을 다시 흐트릴 각오를 하고 부양책을 써야 할 시점이냐 하는 것이다.
성장의 급격한 둔화가 한편으로는 물가와 국제수지에서 기대 이상의 개선으로 나타났듯 경제에는 공짜가 없으며 잘못된 선택의 후유증은 두고두고 더욱 심한 고통으로 남는다는 것을 4·4대책에서 다시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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