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Story] 증권사 회장님도, 기업 사장님도…아뿔사, 너무 빨리 팔았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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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시가 뜨겁게 달궈지면서 '주식 대박'의 성공 스토리가 연일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빛이 있으면 그늘도 있는 법. 강세장 속에서도 성급하게 주식을 파는 바람에 많게는 수십여억원의 차익을 발로 차버린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눈길을 끄는 것은 이런 불운으로 냉가슴을 앓은 기업 최고경영자(CEO)나 대주주들도 적잖게 눈에 띈다는 점이다. 이들은 일반 투자자보다 기업 정보를 더 가까이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한화증권 이영곤 책임연구원은 "증시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봄철 개구리와 같고, 주가 맞히기는 '신의 영역'이란 격언을 새삼 일깨워 주는 사례들"이라며 "인터넷 등으로 투자 정보가 넘쳐나고 있어 역설적인 판단과 선택이 더 중요한 시대가 됐다"고 말했다.

◆대박 장세에 가슴앓이=두산그룹의 박용오 전 회장은 ㈜두산 주식을 3월 10만 주, 5월엔 4만 주를 팔았다. 차익은 약 117억6000만원. 하지만 이후 두산의 주가는 계속 올랐다. '지주회사 테마'붐이 몰아친 덕이다. 급기야 20일 두산 주가는 장중 한때 15만9000원까지 올라 사상 최고가를 경신하기도 했다. 박 전 회장이 만일 이날 종가(14만7500원)에 처분했다면 206억원을 챙길 수 있었다. 불과 두세 달 먼저 파는 바람에 90억원의 차익을 놓친 셈이다.

이종호 삼호개발 대표도 상황은 비슷하다. 삼호개발은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대선 공약으로 내세운 경부 대운하의 대표 수혜주. 지난 2월 초 이 전 시장의 인기를 등에 업고 2000원선에서 머물던 주가는 8000원 선까지 뛰었다. 이 대표는 2월 말과 3월 초에 걸쳐 130만여 주를 93억여원에 처분했다.

그러나 경부 대운하가 여전히 주요 이슈가 되면서 주가는 계속 뛰어 20일엔 9550원까지 올랐다. 만약 그가 이날 지분을 처분했다면 32억원은 더 챙길 수 있었다.

조정호 메리츠증권 회장도 지난달 30일부터 이달 1일까지 메리츠증권 주식 130만 주를 장내 매도했다. 하지만 이후 주가는 증권 업종의 초강세에 힘입어 33.7%나 뛰었다. 불과 20여 일 사이 60여억원을 발로 차버린 셈이 됐다.

◆똑같이 자사주 샀건만…=자사주를 대거 사들인 금융지주사 최고경영자(CEO)들 간에도 희비가 갈리고 있다. 이 중 신상훈 신한은행장은 함박웃음을 터트린 경우다. 그는 4월 26일부터 지난달 10일까지 여섯 차례에 걸쳐 신한지주 주식 7만 주를 사들여 보유 주식을 10만9694주로 늘렸다. 19일 현재 신한지주의 주가는 5만6200원으로 4월 26일의 5만3500원에 비해 5%(2700원) 뛰었다.

반면 은행이 주력인 지주회사 CEO들은 자사주 매입으로 별 재미를 보지 못해 어깨가 처져 있다. 자본시장통합법의 국회 재정경제위원회 통과로 은행주가 최근 상승장에서 소외됐기 때문이다.

하나금융지주의 윤교중 사장은 4월 4일 이후 지난 10일까지 세 차례에 걸쳐 하나지주 주식 7345주를 사들였다. 그러나 19일 현재 이 회사 주가는 4만6400원으로 4월 4일에 비해 4%(1950원)나 밑돌고 있다.

우리금융지주 박병원 회장도 속이 편치 않다. 그는 지난달 21일 우리금융지주 지분 130주를 2만2800원에 매수했으나 19일 우리금융 주가는 2만1950원으로 주식을 사들이기 시작한 시점보다 850원(3.7%)이나 떨어진 상태다.

표재용.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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