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작전 본부”고교 교무실/“미달학과를 빨리 파악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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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부모·교사·수험생 몰려 부산
대학원서 접수 마감날인 27일 전국 대학의 접수창구마다 예의 「눈치작전」이 유례없는 대소동으로 나타나 「우리 교육 이래도 되는가」라는 심각한 의문이 다시 한번 제기됐다.
수험생·학부모·학교측이 「삼위일체」가 되어 벌이는 한국형 대소동은 올해도 또 한번 웃지못할 뒷얘기와 함께 「과연 언제까지 이래야 하나」라는 반성을 낳고있지만 해마다 그랬듯이 일과성 열병으로 지나갈 것이 분명하다.
이날 오후 각 대학 접수창구와 고교교무실 풍경은 우리 교육의 모순과 병폐를 보여주는 축도나 다름없었다.
서울 A고의 경우 명문 S대에 지원할 우등생 7∼8명이 오후부터 부모와 함께 학교에 나와 교무실에서 대기하며 학교측의 「지도」에 따라 일사불란한 「작전」을 폈다.
마감 1시간 전까지 학교에 머물러 지원상황을 살피다 오후 4시쯤 담임교사 인솔아래 대학으로 달려가 현장에서 학과를 적어내는 별난 작전이었다.
B고 교무실은 마지막날까지 지원대학도 결정하지 못한 학부모·수험생들이 상담실에 몰려 혼잡을 빚었다.
한 수험생은 오후 3시쯤에야 지방C대 원서를 들고와 학교장 직인을 받아가면서 시간이 늦지 않겠느냐는 지도교사의 조언도 듣는둥 마는둥 달려나갔다.
진학 상담실에는 교장선생까지 나와 살기마저 감도는 긴장된 표정으로 교사들을 닦달했다.
『미달학과를 빨리빨리 파악해 수험생들에게 알려주라』는 주문.
일부 젊은 교사들은 그같은 교장의 주문에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으나 너무도 절박한 분위기에 누구도 이의 제기를 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마감시간 직전 K대 접수창구 앞에서는 1,2지망학과를 4∼5차례나 고쳐 적어 원서가 엉망이 되어버린 한 여자 수험생이 다시 학과를 고치려 했으나 여백이 없자 발을 동동구르다 접수직원으로부터 수정액을 빌려 지우곤 다시 써 접수하는 해프닝까지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대학의 바른 자리,고교교육의 정상화를 얘기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잠꼬대일까. 올해도 이랬으니 내년에도 이럴 수 밖에 없는 일일까.<하철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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