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데없는 박태준의원 외압설/국민당서 퍼뜨려/측근들 “사실무근”일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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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사그라들었던 박태준의원의 거취문제가 27일 오후 느닷없이 유세장 연단위로 튀어올랐다. 정주영 국민당후보는 대구유세에서 『박 의원이 국민당에 입당하기로 돼있는데 정부압력으로 귀국을 못하고 있다』고 목청 높여 외압설을 퍼뜨렸다.
변정일대변인도 성명까지 내 『감사원의 포철특별감사와 박 의원 귀국봉쇄는 공작정치』라고 주장했다. 김대중 민주당대통령후보도 28일 경북유세에서 국민당과 마찬가지로 외압설을 강도높게 비판했다. 이 문제를 공작정치란 쟁점으로 삼고나선 것이다.
소동은 사실 이날 낮부터 시작됐다. 『정부가 대선후까지 귀국하지 말도록 박 의원에게 종용하고 있다』는 「박 의원 인척」의 주장이 일부에 보도되면서부터였다. 그 인척은 한걸음 더 나아가 『박 의원은 일본에서 중국으로 갔는데 기관원들의 감시하에 있다』고 「폭로」했다는 것이다. 이런 얘기들이 진실이라면 김복동씨가 파동에 이어 또 한차례 정부의 중립성시비를 불러일으킬만한 소재였다. 사실이라면 국민당 주장은 정당한 문제제기가 된다.
그러나 박 의원 주변은 한결같이 『터무니 없는 조작』이라고 부인하고 나섰다. 박 의원과 가까운 정석모의원,박 명예회장의 대외창구인 이대공포철부사장,국회보좌관 조용경씨,박 의원의 맏사위 윤모변호사 등은 한마디로 『박 의원은 국민당 입당의사가 없으며 외압은 말도 안된다』고 일축했다.
이들이 밝힌 박 의원의 근황과 심경은 이렇다.
『박 의원은 11월7∼17일 베트남을 방문해 4개 합작사업건을 처리했다. 28일 중국으로 갔으며 12월5일께 다시 일본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중국과는 수도철강그룹과의 합작 등 중요사업이 많이 걸려있다. 그는 지금 경제사업에 전념하고 있다.』
박 의원은 해외상담이 첩첩쌓여 있는데다 국내 정치상황에 휩쓸리면 골치아프니 당분간 귀국할 생각이 없다는 것이 측근들의 공통된 전언이다. 이는 선거가 있으면 재벌총수들이 시달리기 싫어 외유를 나가는 사례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박 의원 본인이 지난 21일 김영구 민자당사무총장에게 전화를 걸어 『국민당 입당설은 우스운 얘기』라고 일축한 적이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볼때 국민당과 정주영후보가 부추기는 박 의원 파동은 별반 근거가 없는 정치선전용 헛소문일 가능성이 훨씬 크다. 때문에 민자당과 박 의원측에서는 『국민당이 속이 빤히 들여다 보이는 심리전을 전개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자꾸 여권의 허점을 구석구석쑤셔대 일단 단기차익부터 챙겨보자는 속셈이라는 것이다. 국민당의 입당설이 들어맞은 경우도 있다. 김복동의원이 「외압」을 뚫고 입당했고 민자당 탈당파 문제는 정 후보의 큰소리대로 들어맞았다.
그러나 틀림없이 입당한다던 정호용의원은 거꾸로 민자당 옷을 입었고 박 의원은 일본에서 국민당 심리전을 불쾌하게 느끼고 있다.
이같은 소동책임은 박 의원측에도 없는 것이 아니다. 민자당 탈당때부터 그랬듯이 그의 애매모호한 처신이 여러가지 공설의 진원지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입당설이 자신의 뜻이 아니라면 그는 공인의 입장에서 명시적으로 밝혀야할 필요가 있다.<김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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