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쌀개방­GATT 탈퇴 갈림길/UR 최종협상안 초읽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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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백8국중 11국만 관세화 반대/스위스는 「10년유예」 받아들여/협상 급진전따라 정부대응책 서둘러야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 무역협상위원회(TNC)회의에서 성탄절 이전까지 우루과이라운드 최종협상안을 마련키로 함으로써 정부는 앞으로 20여일내에 쌀시장의 개방여부에 대한 단안을 내려야 하는 어려운 갈림길에 서게 됐다.
정부는 회의후에도 『「관세화」는 물론이고 「최소시장」 접근도 안된다』는 개방불가 원칙을 일단 재확인하고 있다.
그러나 최종협상안 작성과정에서 우리 입장이 수용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주제네바대표부 박수길대사는 회의진행과정에서 『미국과 EC간의 협상에 많은 시일이 걸린데 비해 다른 나라의 관심사항에 대해서는 3주일 정도의 시간밖에 주지않는 것은 형평에 어긋난다』며 협상과정에서의 형평성 보장을 요구했고 일본도 같은 취지의 발언을 했으나 동조세력이 미약한 상황이다.
UR협상에 참여하는 1백8개국중 농산물에 대한 「예외없는 관세화」에 반대하는 나라는 11개국에 불과한데다 그나마 강경한 입장을 보이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스위스·캐나다 등 4개국 정도다.
더구나 스위스의 경우 『10년간의 유예기간을 거쳐 개방할 수 있다』고 돌아섰고,일본도 공식적으로는 개방불가를 외치고 있으나 내부적으로는 개방폭을 줄이는 방향으로 협상안을 모색하는 둥 물밑탐색을 하고 있는 눈치다.
만약 다른 나라들이 유예기간을 두는 선에서 관세화나 2∼3%범위의 최소시장접근을 받아들이게 되면 우리에게는 쌀시장을 개방하거나 아니면 GATT에서 탈퇴하는 양자택일밖에 남지 않게 된다.
대외무역의존도가 큰 우리나라는 GATT에서 탈퇴할 경우 현경제체제의 유지가 불가능해 선택의 여지가 없는 셈이다.
따라서 남은 기간중 우리나라는 일본 등 입장이 비슷한 나라와 공동보조를 취하면서 쌀시장의 개방을 막기위한 최대한의 협상노력을 기울이되 사태진전에 따른 다각적인 대응책 마련이 시급해지고 있다.
그동안 쌀문제에 대한 논의 자체가 개방의 여지를 남기는 것처럼 인식돼 사후대책 마련논의조차 금기시돼왔으나 UR협상이 막바지에 이른 만큼 감정을 앞세우기보다는 이해득실을 차근차근 따져보자는 것이다.
최각규부총리가 지난 25일 『UR협상이 타결돼 새로운 무역질서가 확립되는 시기가 되면 정계·학계·경제계·농민 등의 광범위한 토론과 의견협의를 거쳐 대응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해놓고,이것이 개방가능성을 뜻하는게 아니라고 해명한바 있지만 결국 대책마련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사후대책의 마련을 소홀히 한채 최악의 사태가 닥칠 경우 정치권이나 정부는 「외국의 개방압력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며 뒤로 빠지고 농민들만 험난한 UR파고에 내몰리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쌀시장이 열린다면 농민들만으로 개방파고를 견뎌내기가 어려우며 결국 모든 국민이 부담을 나눠질 자세가 돼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국민적인 합의가 전제돼야 한다.<길진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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