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포공항 '조국 탑' 6년 만에 다시 우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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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 탑을 세우기로 했다. 재미교포 사업가 김시면(72)씨는 1971년 조국에 무언가 보답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안동에서 태어난 그는 성균관대 졸업 직후인 61년 스물여섯 살 때 미국으로 이민 갔다. 빈 주머니로 태평양을 건넌 그는 로스앤젤레스(LA)에서 한국 가발 판매로 성공했다. 현재는 '시즈 디벨럽먼트'라는 부동산개발회사의 사장이다.

이민 생활 10년째인 71년 김 사장은 당시 LA 총영사였던 노신영 전 총리에게 "조국에 보답하고 싶다"고 말했다. 논의 끝에 당시 한국의 관문이던 김포공항에 탑을 세우기로 했다.

# 탑이 섰다. 공항 청사를 제외하고는 주변이 허허벌판이던 71년 공항 입구에 21m 높이의 탑이 들어섰다. 김씨가 당시 자비 5만 달러를 쾌척했다. 설계는 재미 건축가인 김해운씨가 했다. '조국에 드리는 탑'이라는 현판 글씨를 김 사장이 직접 썼다. 당시에 박정희 대통령은 그를 청와대로 불러 "젊은 사람의 정신이 훌륭하다"고 칭찬했다 한다. 이 땅을 떠나고 돌아오는 수많은 사람은 이 탑을 기억했다.

# 탑이 없어졌다. 2001년 탑 밑으로 인천공항철도 정거장과 지하철 9호선 김포공항역 공사를 하면서 탑을 철거했다. 서울시지하철건설본부와 공항철도㈜는 "공사가 끝나는 대로 새 탑을 지어 주겠다"고 약속했다. 김 사장은 "협조하는 게 당연했지만 섭섭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탑이 사라지고 6년이 흐른 지난 3월 인천공항철도가 개통됐다. 철도는 한국의 새로운 관문인 인천국제공항과 김포공항을 오간다.

# 새 탑을 세웠다. 지하철건설본부와 공항철도는 약속대로 최근 김포공항 입구에 새 탑을 세웠다. 24m 높이에 황동색 철탑(사진)이다.

10억원에 이르는 건립 비용은 공항철도와 서울시지하철건설본부가 댔지만 디자인은 김 사장의 딸인 미국 남가주대(USC) 건축학과 교수 도리스(44)가 맡았다.

아버지와 함께 한국에 온 도리스는 "탑을 설계하면서 조국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을 절감했다"고 말했다. 그녀의 세 자녀도 함께 방문해 할아버지가 세운 탑에 관한 얘기를 들었고, 엄마가 디자인한 새 탑을 구경했다.

김 사장은 "탑이 다시 생겨 반갑다. 손자들에게 할아버지의 조국 사랑을 보여줄 수 있게 됐다"며 기뻐했다. 그는 23일 오전 10시 탑 앞에서 축하연을 열 계획이다.

성시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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