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혁명 "봉건 구체제 지양 농민이 이끈 혁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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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동학혁명 1백주년을 기념하는 학술발표회가 21일 오후2시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회의장에서 열렸다. 천도교 측 동학혁명 1백주년 기념사업회가 마련한 이 학술발표회에서 신용하(서울대)·이현희(성신여대)·노태구(경기대)교수가 각각 발 제자로 나와「동학혁명의 현대적 조명」이란 주제아래 논문을 발표했다.
신용하 교수는「동학혁명의 역사적·사회적 성격」이란 제목의 발표논문에서 그동안 쟁점이 돼 왔던 동학혁명의 성격규정 문제를 재론, 주목을 모았다.
신 교수는 동학혁명이 운동형태상으로 보면 농민전쟁의 양상을 띠고 있으나 역사적 성격에서 보면 중세·봉건적 구체제(앙시앵레짐)를 해체한 뒤 근대지향의 신체제를 수립하려 한 농민혁명운동이었다고 규정했다.「농민층은 계급적 미성숙과 특유의 고립·분산 성 때문에 혁명의 주체가 될 수 없다」는 서구역사해석에 매달려 1894년 갑오전쟁을 농민혁명운동으로 부르는데 반대하는 논자들도 적지 않다고 밝힌 그는『그러나 이는 16세기초의 유럽상황과는 현격한 차이를 보이는 19세기말 조선왕조사회의 신분제적 특수성과 농민층의 위상을 간과한데서 생겨난 잘못된 견해』라고 못박았다.
그는 이 논문에서 특히 19세기말 한국의 근대사회체제 성립문제에 언급하면서『구체제는 1894년의 동학농민혁명운동에 의해 붕괴됐고 그에 이은 근대적 신체제의 수립은 개화파의 갑오경장이라는 시민적 근대개혁에 의해 추진됐다』는 이른바「동학혁명운동과 개화파의 시민적 개혁의 구조적 결합」설을 제시, 관심을 끌었다.
이현희 교수는「동학혁명과 민족운동」이란 논문을 통해 동학혁명 이후 3·1운동에 이르는 국내 민족운동은 모두 동학혁명정신의 온 축으로부터 기인했다는 적극적 논의를 펴 보였다.
그는『1894년의 농민혁명은 1860년에 태동한 동학사상의 인간성회복과 보국안민이란 국가관·민족관속에서 의식이 발아, 현실화된 것』이라고 전제하고 『따라서 동학혁명은 종교운동의 차원을 넘어 반 침략·반체제의 정치성을 띤 자립·자주적 의식에서 일어난 민중구국운동의 신기원이었다』고 평가했다.
노태구 교수는「동학혁명과 태평천국혁명의 비교」란 논문에서 두 혁명운동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살핀 뒤 둘 다 끝내 실패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던 당시의 내·외재적 원인을 규명했다.
그는 두 혁명운동이 ▲시대배경이 같고 농민층이 주도하는 반항운동이었다는 것 ▲반 외세를 기치로 하는 민족주의운동이었다는 것 ▲반봉건적·민주주의적 경향을 내포하고 있었다는 것 ▲종교의 외피를 두르고 있었다는 것 등에서 공통점을 지니면서도 운동의 목적이나 투쟁의 목표, 전통문화에 대한 태도 등에서는 큰 차이점을 보였다고 지적했다. 즉 태평천국혁명이 건국을 목적으로 한 만청 상대의 민족간 투쟁이며 변형된 서구기독교문화를 수용하면서 중국전통문화를 파기하려는 지향성을 보였던데 반해 동학혁명은 사회개혁을 내건 민중계급의 투쟁이었고, 또 서학에 반대해 기본적으로 한국적 전통문화를 보수하려는 태도를 보였다는 것이다. <정교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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