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CD」알고도 숨겼다/금융기관서 발견후 40여일 “쉬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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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공개되면 신용 떨어진다” 구실/자살 등 터지자 뒤늦게 신고/이광수씨는 늑장수사로 19일 일본도피
21억원어치의 가짜 CD를 시중에 유통시키고 미국으로 달아난 황의삼씨 사건이 표면화되기 40여일전인 10월1일 서울신탁은행·해동상호신용금고가 이미 고객이 입금시킨 가짜 CD를 확인하고도 『신용도가 떨어진다』며 이를 숨겨와 가짜 CD범인을 검거하는데 기회를 놓치게 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또 7백70억원어치의 가짜 CD를 유통시킨 사채업자 이광수씨(41)가 검찰의 출국 금지조치 하루전인 19일 일본으로 출국한 사실이 밝혀져 당국의 늑장 수사도 문제가 있는 것으로 지적됐다.
◇가짜 확인=이같은 사실은 지금까지 발견된 1백96억원의 가짜 CD중 최초로 3억원어치의 가짜 CD를 유통시킨 혐의로 서울 중부경찰서에 연행된 사채업자 유은형씨(44·서울 명일동)의 진술을 통해 확인했다.
경찰에 따르면 해동상호신용금고의 5월29일 사채업자 유씨에게 유씨의 집과 가짜 CD 3장을 담보로 1억3천만원을 대출해줬으며 유씨가 다시 10월1일 또다른 가짜 CD 3장을 들고와 대출을 요구하자 서울신탁은행에 이를 조회,6장 모두 가짜임을 알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해동상호신용금고·서울신탁은행은 『공개되면 신용도가 떨어진다』며 가짜 CD 발견사실을 숨겼고 경찰에 신고하지 않은채 유씨에게 『대출해준 1억3천만원을 빨리 갚으라』고 독촉했다는 것이다. 해동상호신용금고측은 지난 11일 미국으로 달아난 황씨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자 사채업자 유씨를 불러 『가짜 CD를 서울신탁은행에 갖다주고 없던 일로 하자』고 묵계,유씨가 직접 가짜 CD를 들고가 서울신탁은행 영업부 이모차장에게 전달한 것으로 밝혀졌다.
◇허위신고=서울신탁은행·해동상호신용금고측은 이 사실을 계속 숨겨오다 최근 상업은행 명동지점장 자살사건이 터지고 가짜 CD가 계속 발견되자 해동상호신용금고가 은행감독원에 가짜 CD가 발견됐다고 뒤늦게 신고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서울신탁은행·해동상호신용금고는 이미 10월1일 가짜 CD가 발견됐던 사실을 숨긴채 지난 12일 비로소 가짜CD를 확인했다고 허위보고했다.
유씨는 경찰에서 『가짜 CD를 사채 중개업자인 이창헌씨로부터 8천만원을 주고 샀으며 이씨는 또다른 사채업자인 이창식씨로부터 이 CD를 구입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업계의 한 관계자는 『만일 서울신탁은행·해동상호신용금고가 처음 가짜 CD가 발견된 10월1일 경찰에 신고해 수사가 일찍 시작됐으면 이처럼 엄청난 파동이 일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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