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계 두 거장 무대 떠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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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한국 무용계를 이끌어온 두 거목 송범 국립무용단장(66)과 임성남 국립 발레단장(63)이 대표작『도미 부인』과『호두까기인형』을 마지막 무대에 올리고 30년간 몸 담아온 국립극장을 떠난다.
송 단장은『있는 정열을 다 바쳐 하고싶은 작품들을 해본 행운아』로 자신을 규정하고 『2년 전부터 퇴임을 생각했으나 마땅한 후임이 없어 망설였던 것』이라면서 국립 무용단장 퇴임과 함께 50년에 걸친 무용인으로서의 생활을 마감하겠다고 공식 은퇴를 선언했다.
한편 임 단장은 이번 퇴임이 지난 86년에 개정된 국립극장 산하 공연단체들의 임기제한 규정(3년으로 1차 연임에 한함)에 따른 것임에도 30년간 고락을 함께 해온 발레단을 떠난다는 사실이 아직도 믿기지 않은 듯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지금으로서는 막연하다면서 개인 연구실을 통해 후학들을 지도하며, 발레에 관한 이런 저런 것들을 정리해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한국 무용계의 대부로 불리는 이들 두 원로는 62년 국립극장 설립과 함께 창단된 국립무용단의 창단 멤버로 입단, 각기 한국무용과 발레를 이끌어 온 국립극장의 산 증인.
양정중 2년 당시 우연히 무용가 최승희 씨의 공연을 본 것이 계기가 돼 무용과 인연을 맺은 송 단장은「무용극으로 세계 속에 한국무용을 심겠다」는 다짐을 이뤄오는데 평생을 바쳐왔다.
개인발표회만도 9회나 되는 송 단장은 공연시간이 한시간을 넘는 대작만도 10편을 헤아 릴 정도. 중편(공연시간 40분) 8편에 소품은 1백편이 넘는다.
고별공연으로 무대에 올리는『도미부인』(26∼29일 평일 오후 7시. 토·일요일 오후 4시)은 송 단장이 가장 사랑하는 대표작.『삼국유사』에 나오는 도미부부의 설화를 1시간15분물로 무용극하한 이 작품은 84년 LA올림픽 문화예술축전 초청작품으로 만들어져 그간 공식공연만도 1백50여회를 헤아리는「한국무용의 신고전」이 됐다.
『후배들이 이 작품을 나름대로 철학을 가지고 계속 다듬어 발레에서의「백조의 호수」와 견줄 만큼 시대를 초월한 고전으로 뿌리내리기를 바랄 뿐입니다.』
송 단장은 창작에 필요한 열정이 식어가는 것을 느껴 2년 전부터 퇴임을 생각했으나 후계문제 등으로 미뤄왔었다』면서 『예술적 정열이 다시 용솟음치면「석가모니 일생」을 소재로한 대작을 해보고 싶은 것이 마지막 소원』이라고 말했다.
5백여편의 작품을 무대에 올릴 정도로 왕성한 활동을 해온 임 단장은 작년『카르멘』으로 일본 무대에 진출함으로써 국립발레단의 국제무대 진출이라는 오랜 숙원을 풀었다. 그러나 한국적인 작품을 가지고 세계 발레무대로의 진출하고자 하는 그의 소망은 발레단을 떠나게됨으로써 당분간은 이루어지기 어렵게 됐다.
그가 가장 사랑하는 대표작은『백조의 호수』. 이번 퇴임공연에도 임 단장은『백조의 호수』전막을 올리기를 희망했지만 이 작품이 내년도 예술의 전당 개관기념 행사에서 공연되게 됨에 따라 해마다 송년 프로그램으로 국립극장 대극장 무대에 오르던『호두까기인형』(12월10∼13일)이 퇴임무대를 장식하게 됐다. 74넌 첫 발표이후 이번이 15회째 무대에 오르는 것으로 음악은 코리안 심퍼니 오키스트라(지휘 정치용)가 맡는다.
차이코프스키의 3대 작품 중『잠자는 숲 속의 미녀』만을 끝내 무대에 올려보지 못한 채 퇴임하게돼 무척 아쉬워하는 임 단장은 한시바삐 발레학교와 발레 전용극장이 만들어지기를 희망했다. <홍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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