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부는 「한·러경협」바람/옐친방한 「보따리」 “기대반 우려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나홋카공단·야쿠트가스전 논의/업계,소비재 수출상품점검 활기
옐친 러시아대통령의 방한을 맞아 한때 냉각된 한·러 경제협력이 다시 꿈틀대고 있다.
경협열기는 러시아쪽에서 먼저 불어와 옐친대통령이 방문국가로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한국을 선택했고,또 모두 1백23명에 달하는 경제사절단의 규모에서도 대한경협에 대한 러시아측의 높은 기대를 읽을 수 있다.
양국 정상들은 ▲대소 소비재 전대차관의 재개 ▲나홋카 한국전용공단 건설 ▲야쿠트가스전을 비롯한 자원개발 등 경제문제를 폭넓게 논의하고 무역협정 등 경제관련 협정들도 체결할 예정이다.
그동안 건설주체를 놓고 문제가 된 나홋카공단은 용수·전력 등 사회간접자본 시설에 대해 러시아측이 건설을 맡되 우리측 전대차관을 이용하도록 합의하고,야쿠트가스전 개발도 그동안 민간차원의 논의수준에서 정상들간의 공식합의로 「보증」될 것으로 보인다.
또 소비재차관은 러시아측이 차관채무보증 이행문서를 넘겨주고 그동안 밀렸던 차관이자도 곧 갚겠다고 통보함에 따라 이번 방문을 계기로 그동안 한·러경협의 걸림돌들은 대부분 제거될 전망이다.
러시아측 경제사절단도 의례적인 방문이 아니라 ▲과학기술 ▲자원 ▲에너지·정보통신 ▲기계제작 및 군수공장의 민영화 등 8개그룹으로 나누어 관련된 분야의 국내기업들과 구체적인 상담을 활발하게 벌일 예정이어서 민간차원의 경제교류도 활기를 띨 전망이다.
이에 따라 국내업계의 기대도 크다.
우선 소비재차관 3억6천만달러어치의 수출재개를 위해 삼성물산·럭키금성·대우 등 종합상사들은 그동안 창고에 쌓아둔 상품을 꺼내 점검하고 있으며 러시아군수공장의 민영화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방안도 정부와 공동으로 검토하고 있다.
또 러시아 시장이 당장은 어렵지만 크기나 중요성에서 결코 포기할 수 없다는 판단아래 국내업계는 현재 이사급의 현지지사장을 전무나 부사장급으로,교역규모에 비해 파격적으로 격상시킬 움직임이다. 정정불안으로 벽에 부닥쳤던 모스크바의 대규모 한·러무역센터 건립도 부지선정과 함께 내년 상반기에 착공될 전망이다.
그러나 국내업계의 우려 또한 크다.
앞으로 민간기업 중심으로 바뀔 대러시아 경협은 경제불안이라는 러시아 내부의 근본문제가 해결되지 않는한 어차피 협력규모가 제한적일 수 밖에 없고 우리가 줄 보따리도 별로 없다는게 문제다.
대러시아 소비재차관에 대한 국민여론이 좋지않은 탓에 이미 약속한 액수의 차관을 「재개」하겠다는 것일뿐 더이상의 차관공여는 힘들고 또 무역적자에 시달리는 국내경제의 실정을 고려하면 막대한 외화가 필요한 러시아를 도와줄 여력도 별로 없기 때문이다.
또 이번 방문이 정치적·외교적 성격이 강하다는게 국내업계의 분석이다.
옐친대통령이 노태우대통령의 임기를 얼마 남겨놓지 않고 방한한 것이나 대규모 경제사절단을 동행시킨 것은 러시아측이 한국보다는 다분히 일본에 대한 시위효과를 노린게 아니냐는 것이다.
특히 이번에 중점 논의될 대상도 당장 돈이 들어가거나 임기말의 정부가 책임져야할 「현안」보다는 나홋카전용공단 건설이나 야쿠트가스전 개발 등 실현가능성에 대해 전문가들도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먼훗날의 일」이고 보면 『상징적인 의미가 크지만 실제 큰 보따리는 기대할 수 없다』는 국내업계의 우려를 뒷받침하고 있다.<이철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