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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꺾기」도 눈치껏 해야 유능/은행지점장들의 실적경쟁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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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관내 거래처 경조사챙기기 바빠/사채자금도 모른척 중개하기도
은행 지점장.
은행 근무경력 20∼25년.
상법상 모든 은행영업을 할 수 있는 「지배인」의 위치에 있고,기사를 둔 승용차가 나오며 누구의 간섭도 없이 마음대로 외출도 할 수 있는 「행원의 꽃」 또는 「작은 은행장」.
지점장은 그러나 고달프기 짝이 없다.
지점장은 무엇보다도 예금실적에 따라 울고 웃는다.
지난달부터 실세금리가 급격히 떨어지면서 이제 은행도 예금실적이 아니라 수익을 따져야한다는 바람이 불고 있긴 하지만,아직도 지점장의 능력을 재는 주된 잣대는 예금이다.
실적에 몰리다 보니 어쩌다 거액 예금주가 제발로 찾아오면 신분이나 자금출처를 알아보기는 커녕 아는체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부터 재보기가 일쑤다. 은행감독원의 꺾기 단속 특검이 나오고 본점에서 꺾기를 자제하라는 공문이 내려와도 눈치껏 꺾기를 계속해야만 유능한 지점장으로 행내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때로는 사채자금인줄 알면서도 겉으로는 짐짓 모르는체 중개를 하기도 하며,평소에는 관내의 거래처를 발이 부르트도록 돌아다니며 경조사를 챙기고 애로사항을 들어 주어야 한다.
시중은행의 경우 서울 명동·서소문·남대문·소공동·종로·여의도지점 등이 특A급으로 꼽힌다. 이들 지점의 예금고는 1천억원대를 넘으며,다음 인사때 본점의 요직 부장을 거쳐 임원으로 승진할 가능성이 크다. 지점장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임원승진을 꿈꿀텐데,경쟁률은 1백대 1이 넘는다.
이번에 자살한 이희도지점장의 경우 서소문·명동지점장을 거치면서 예금 1위를 기록,상당한 수완을 인정받아오던 터였다. 그는 주로 양도성예금증서(CD)와 신탁예금잔고를 높여 자금을 조성했는데,이는 결국 사채업자와의 연계가 있었음을 뜻한다고 금융계는 보고 있다. 그러나 본점에서는 예금실적만 많으면 됐지 그게 어떤 돈인지는 굳이 따지려들지 않기 때문에 문제를 키워온 셈이라는 지적이다.
지점장이 자기 선에서 처리할 수 있는 대출한도는 은행마다 지점의 크기와 등급에 따라 다르지만 통상 신용대출의 경우 3천만원,담보를 잡는 대출의 경우 1억원선이다.
금융계는 이번 사건이 그동안 은행이 취해온 수신실적 위주의 은행경영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 만큼 지점장관리에 변화를 가져오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양재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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