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번 바뀐 유·무죄/고법­대법 핑퐁 재판/친구 아내 강간 혐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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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고법 “유죄”두차례 파기 환송/증거 불충분 여부놓고 팽팽/3년째/13일 고법 세번째 판결에 법조계 관심
강간치상 혐의로 기소된 30대 운전사가 이례적으로 대법원에서 두번이나 파기환송 되는 등 다섯차례에 걸쳐 유·무죄가 반전되는 「시소」판결 끝에 여섯번째 재판을 받게돼 재판 결과가 비상한 관심을 끌고있다.
서울고법 형사1부(재판장 김대환부장판사)는 친구의 아내를 강간,상처를 입힌 혐의로 기소된 이모씨(31·운전사·동해시 이로동)에 대한 두번째 대법원 파기 환송 사건을 배당받아 13일 이씨에 대한 첫 공판을 연다.
이씨는 1심에서 무죄,항소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아 대법원에 상고한 끝에 무죄취지로 파기됐으며 서울고법 형사3부는 『피해자의 친구 등 증인들의 진술과 증거 등을 종합해 볼때 죄가 인정된다』며 대법원 판결을 정면으로 뒤엎고 또 다시 유죄를 선고했었다.
대법원은 그러나 지난 9월1일 유죄로 올라온 고법의 판결을 또 한번 파기,피해자의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는 이유로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되돌려 보냈다.
이처럼 형사사건에서 고법이 대법원의 판단을 뒤집고 유죄를 선고한 것은 드문 일인데다 이를 대법원이 인정하지 않고 또다시 하급심으로 내려 보낸 것은 지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법상 상급법원의 판결은 하급심을 기속토록 돼있어 고법이 대법원의 판결 취지를 뒤엎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이씨는 89년 9월8일 오후 10시40분쯤 동해시 삼화동의 친구 박모씨 집에 찾아가 박씨의 부인(29)에게 『남편이 술에 취해 인근 제방 둑에 쓰러져 있으니 데리러 가자』고 제방으로 유인한뒤 강간한 혐의로 구속기소 됐었다.
이씨는 그러나 춘천지법 강릉지원에서 열린 1심공판에서 『피해자의 주장 외엔 유죄를 입증할만한 별다른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90년 7월 무죄를 선고받았다.
『피해자가 사건 발생 10여일이 지난 뒤에야 사건을 신고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이 재판부의 무죄선고 이유였다. 이에 대해 검찰측은 즉시 항소,지난해 6월 서울고법으로부터 『가해자가 남편의 친구인데다 강간사실을 신고할 경우 두 가정이 파탄에 이르게 된다는 점을 고려,피해자가 신고를 망설일 수 있다고 보여진다』는 유죄판결을 끌어냈다. 당시 재판부는 유죄에 대한 확신을 가져 이씨에게 징역 2년6월을 선고하고 법정구속까지 했었다.
그러나 대법원은 같은해 10월 『고법이 하급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사건에 대해 피해자 소환조사도 없이 유죄를 인정한 것은 심리를 충분히 하지 않은 것』이라며 무죄를 선고,사건을 고법으로 내려보냈다.
사건을 배당받은 서울고법 형사3부는 이씨를 불구속 상태로 두고 충분한 증인조사를 통해 사건을 면밀히 검토했으나 여전히 이씨가 범인이 틀림 없다고 판단,지난 5월 유죄를 선고했다. 당시 범행현장에서 이씨의 라이터가 발견돼 증거로 채택됐다.
그러나 사건을 다시 맡은 대법원은 『피고인을 범인으로 볼 증거가 여전히 불충분 하다』는 이유로 지난 9월 두번째로 고법의 판결을 파기했다.<남정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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