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한국족 기원"전기구석기 소급 가능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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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이제까지 아무르·예니세이·오브강유역의 유적·유물을 살펴보았다. 어떤 유물은 우리의 것과 너무 흡사해 우리 문화에 대한전파·영향을 쉽게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종래 많은 관계가 있을 것으로 추측해왔던 것들은 실제 좀더 재고의 여지를 남겨놓고 있다. 아무튼 주마간산격의 짧은 여정에서 얻은 고고학적 자료를 가지고문화의 기원과 같은 커다란 문제를 단번에 해결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일는지 모른다.
한국문화의 기원·전파에 대해 한눈에 살펴본다는 것은 지극히 어렵다. 왜냐하면 한국문화의 기원이 한 곳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시대에 따른 여러 양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과거 선사시대의 구석기·신석기·청동기시대, 그리고 역사시대의 철기시대에 이 르기까지 그 기원이나 전파는 획일적이 아니고 복잡하다는 것이다.
인류학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 문화기원에 대한 연구는 아직 초보단계이고 시작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우리의 문화기원·형성에 밀접한 관련이 있는 러시아·중국과의 수교가 근년에 와서 이루어져 이제까지 문헌으로만 접해왔던 고고학자료를 실제 보고 우리 것과 비교해 보는 작업이 비로소 시작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러시아나 중국의 고고학을 전공최몽룡<서울대교수>해 그들의 연구를 소화하고, 더 나아가 우리에게 자세히 소개해 줄 학자는 거의 없다시피 한 것이 작금의 실정이다.
또 문화의 기원이나 형성에 관한 연구는 물론 비교할 수 있는 증거인 유물을 직접 다루는 고고학이 중심이 돼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고고학 단독으로만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여기에는 우리 언어의 기원을 연구하는 알타이어학·러시아의 시베리아와 연해주, 그리고 중국에 현재 살고 있는 고아시아족·퉁구스족을 연구하는 민족지학과 그들의 인골을 해부학적으로 비교연구 할 수 있는 형질인류학, 고립된 유전인자의 빈도수와 혈액군과 같은 연구를 통하여 민족의 체질적 특성이나 기원을 연구하는 생화학, 중국측의 사서에 기록된 숙신·동이·동호·여진과 같은 여러 이민족을 역사적으로 비교할 수 있는 고대사학 등이 가세돼야 한다. 고고학의 편년순서인구석기·신석기·청동기와 철기시대에 따라 나타나는 문제점을 살펴보자. 구석기시대 연구에 있어 가장 어려운 것은 한민족의 기원과 그에 파생되는 문제점이다. 현재까지의 연구결과로는 조직적 합성항원유전자의 빈도수로 볼 때 한민족을 구성하는 인종은 북몽고갈래이며 약 1만3천년 전 충적세의 따뜻한 기후와 함께 시베리아의 바이칼호를 떠나 한반도에 정착한 것으로 보고 있다.
또 두개골의 고두나 실상봉기로 볼 때 우리의 직계조상을 평안남도 덕천군 승리산인(35세 추정)이나 평양시 승호구역만 달리인(25∼30세 추정)과 같은 지금으로부터 약 2만년전의 후기구석기시대 하석인류에 직접 연결시키려는 시도도 있다. 후기구석기시대는 1만∼5만년 전으로 호모 사교엔스(현생인류), 즉 크로마뇽인이 살던 시기이다. 그러나 최근 시베리아의 예니세이강 상류 쿠르탁지역의 카멘니고르와 라즈로그에서 아시아 석기 제자의 특징이라고까지 이야기할 수 있는 자갈돌을 이용해 단순한 형태로의 몇 개의 타격면을 가공한 초퍼와 초핑툴(단인과 양인석기)혹은 자갈돌석기(역석기)가 나오고 있으며 그 연대가약20만∼40만년 전을 거슬러 올라간다고 이야기되고 있다. 이러한 석기들이 몽고 고르노 알타이의 사간 아부이 동굴, 내몽골의 대요. 그리고 요령성 금반산 유적에서도 발견된다.
그리고 이와 같은 석기들이 경기도 전곡리 등지에서도 발견된다. 만일 그렇다고 한다면 우리민족의 기원을 후기구석시대가 아니라 그 보다 수십만년을 올라가는 전기구석기시대에서 찾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러나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증명하기 의해 이 시기에 나타나는 직립원인인 북경원인이나 자바원인과 같은 화석인류가 이 땅에서 발견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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