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를 선택한 미국민들/무엇이 클린턴승리 굳혔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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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빈익빈·부익부 없앨 대안에 관심/계속된 경기침체 부시 끝내 쓴잔
미국 국민들은 변화를 선택했다.
노련한 현직대통령을 마다하고 미 50개주중 거의 말석에 위치한 조그만 주의 40대중반 젊은 주지사 빌 클린턴을 그들의 지도자로 선택했다.
불과 1년전만해도 상상치 못하던 일을 미국 국민들은 창조해 냈다.
미국 국민들은 국가 지도자를 바꾸지 않고는 현재 미국이 처한 어려움을 극복해 낼 수 없다는데 합의를 이룬 것이다.
미국 국민들은 현실에 안주하기 보다는 부담을 각오하고 도전을 선택한 것이다.
걸프전을 승리로 이끈뒤 역대 대통령 가운데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조지 부시대통령이 고배의 쓴잔을 마셨다.
인기라는 것이 얼마나 덧없다는 것을 느끼게 만드는 동시에 민주주의가,국민의 심판이 얼마나 무섭다는 것을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사실 미 대통령선거운동이 중반에 접어든 지난 여름이후 클린턴당선자는 여론조사상 부시대통령을 줄곧 앞서왔기 때문에 그의 승리가 새삼스러울 것이 없다. 클린턴은 거의 몇개월간을 10%이상 앞섰으며 선거막바지까지 이러한 경향은 변하지 않았다.
그 가장 큰 요인은 미국의 경제였다.
클린턴의 승리 배경은 시작도 경제요,끝도 경제였다.
곧 회복되리라고 믿었던 미 경제는 선거 마지막까지 감감했다.
실업률은 7.5%로 호전될 가능성을 보이지 않고 1년동안 일자리를 잃은 사람은 1백만명에 달했다. 미국 가정의 평균소득은 오히려 떨어지고 있었으며,빈익빈 부익부의 현상과 계층간의 대립도 심화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 국민들이 다른 곳으로 관심을 돌릴 여유가 없었다.
선거 초반부터 공화당은 「가족의 가치」를 내세워 미국의 전통적인 윤리 회복을 촉구했다. 이와 관련해 클린턴후보의 개인적 약점을 부각시키기도 했다.
부시는 클린턴이 월남전을 기피했으며 여자관계도 석연치 않아 믿을 수 있는 인물이 못된다는 점을 계속 주지시켰다.
그러나 미국 국민들은 경제이외의 다른 이슈에 대해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인종분규 문제·낙태문제·가족의 가치 등도 주요한 이슈로 등장할 것으로 기대됐으나 역대 미 대통령선거 가운데 이번 만큼 이슈가 한 곳으로 모아진 경우도 드물다.
클린턴 당선자는 처음부터 이런 분위기를 감지하고 있었다.
그는 공화당의 여러가지 공격에 대해 맞받아치기 보다는 시종일관 경제의 어려움만을 들어 변화를 호소했다.
그는 『지난 12년간 공화당의 경제정책은 대기업위주의 정책이었으며,그 결과는 국민들이 더 열심히 일을 했는데도 오히려 소득은 줄어든 것이었다』는 점을 계속 강조했다.
반면 부시진영은 『경제가 호전되고 있는중』이라는 반대의 분석에다 경제대신 부시의 노련함·애국심을 강조했다.
경제의 어려움은 유권자들의 마음을 돌려놓았다.
과거 전통적으로 공화당을 지지하던 층도 민주당으로 돌아섰다.
도시근교에 거주하는 중산층 백인들도 보수적인 성향을 버리고 변화를 지지했다. 12년간 미국경제를 끌고왔던 레이거노믹스에 대한 반발이었다.
60년대와 70년대 후반의 민주당정부는 케인스이론을 토대로 정부가 경제의 많은 부분에 개입,결국 재정적자와 인플레를 야기하여 경제위기를 몰고 왔다. 이에 대한 반발로 경제를 시장 원리에 맡기고 정부는 개입을 될 수 있는한 줄여야 한다는 공화당의 보수적인 경제정책이 등장했다.
그러나 이러한 보수적인 경제정책이 미국 국민들의 생활의 질을 떨어뜨렸다는 비판속에 다시 수요중심의 케인스경제학으로 돌아가려는 것이다.
미국은 부시의 집권기간중 냉전구도의 동서 대결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소련이 붕괴됐고 동구가 민주화됐다.
미국선거에서 보수적인 공화당후보가 대통령을 차지한 기회가 더 많았던 이유는 이러한 동서대립의 한 산물이었다.
부시대통령으로서는 이러한 대결에서 승리했으나,그 승리가 선거에서는 오히려 역작용을 했다고도 볼 수 있다.<워싱턴=문창극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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