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을 뭘로 아는가/「즐거운 사라」 파문속에서/이문열작가(기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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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지성의 탈」쓰고 궤변으로 과대포장/검찰대응·석방서명 조작에도 구역질
나는 근래 모두가 한끝에 이어진 일로 세번이나 심한 구역질을 동반한 욕지기를 내뱉어야 했다. 그 첫번째는 간행물 윤리위원회에서 보낸 『즐거운 사라』라는 책을 읽었을 때였고,두번째는 검찰이 그 책을 쓴 사람과 발행인을 구속했다는 뉴스를 들었을 때였으며,세번째는 내가 발기인이 되어 무슨 위원회를 구성하고 그 책을 쓴 사람의 석방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을 벌였다는 TV뉴스를 들었을 때였다.
내가 이 나라에서 글쓰는 사람들 중에 못마땅해 하는 사람들 중의 하나가 바로 그 『즐거운 사라』를 쓴 마 아무개 교수다. 여기서 굳이 마 교수를 소설가로 부르지 않는 것은 아무리 애써도 그가 어떤 공인된 절차를 거쳐 우리 소설문단에 데뷔했는지 기억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마 교수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이유로는 크게 두가지를 들 수 있다. 그 첫째는 그의 보잘것 없는 상품이 쓰고 있는 낯두꺼운 지성과 문화의 탈이다. 근년 그가 쓴 일련의 글들은 이미 알만한 사람에게는 그 바닥이 드러났을 만큼 함량미달에 정성까지 부족한 불량상품이었으나 그는 어거지와 궤변으로 과대포장해왔다. 둘째,그가 못마땅한 이유는 이미 자신의 생산에서 교육적인 효과는 포기한 듯함에도 불구하고 대학교수라는 신분을 애써 유지하는 점이다. 나는 그가 지닌 교수라는 직함이 과대포장된 불량상품을 보증하는 상표로 쓰이고 있는 것 같아 실로 걱정스러웠다.
그런 터에 읽게 된 것이 바로 『즐거운 사라』여서 어느 정도 고정관념이나 편견의 위험은 있으나,읽고 난뒤 내가 먼저 느껴야 했던 것은 구역질이었고,내뱉고 싶던 것은 욕지기였다. 나는 솔직히 이제 어떤 식이든 그런 불량상품이 문화와 지성으로 과대포장되어 문학시장에서 유통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로부터 사흘도 안돼 두번째의 구역질과 욕지기가 첫번째의 그것들을 잊게 했다.
검찰이 이례적으로 시퍼렇게 칼을 빼들고 그 책의 저자와 발행인을 구속했다는 보도였다. 나도 우리 문화의 자정기능이 신통치 못함을 안다. 간행물윤리위원회가 내게 그 책을 보냈던 것도 경고와 시정요구가 저자와 출판사 양쪽에 의해 묵살되자 조력을 얻기위해 보낸 것이었다. 또 구속된 두사람에게도 자정기능의 일부로 나온 그 경고와 시정요구를 오히려 상품선전에 악용한 혐의가 있다. 지난 80년대 「민중상업주의」 시대에 금서목록이 곧 베스트셀러 목록이 되던 것과 비슷한 효과를 기대한다.
그런데도 검찰의 조치에 대해 구역질과 욕지기를 느꼈던 이유 또한 크게 나누면 두가지였다. 그 하나는 다른 분야와 비교해 드러나게 형평이 깨어졌다는데 있다. 그보다 더 해악이 크고 명확한 사안이 수없이 많은데도 개입을 망설이거나 미온적이면서 유독 이번만은 그렇게 신속하고도 삼엄한 법의 칼을 빼든 까닭이 도무지 석연치 않다. 문학 내부로 국한시켜도 다른 방향,예컨대 체제방어측면 같은데서 이토록 신속하고 삼엄하게 대응한 것은 80년대 초반이 고작이었다.
또 다른 하나는 문학계의 자정기능에 대한 지나친 무시다. 80년대 후반의 이념적 관대함이 전반의 엄혹성에서 받은 쓰라린 교훈에서 비롯된 것이라면,그 교훈의 유효함은 이번 사건의 처리에도 참고되었어야 했다.
더디고 불확실한대로 우리 문학계에도 자정기능은 있다. 그것을 무시하고 섣불리 칼을 빼들면 자칫 엉뚱한 문학적 순교자를 만들어 낼 뿐이다. 많은 문인들에게는 무시당한 울분만 품게 하고,독자들에게는 앞뒤없는 동정심부터 일으키게 해서는….
그런데 마지막으로 나에게 견딜 수 없는 구역질과 욕지기가 나게한 TV뉴스보도가 터졌다. 그 보도가 나오기 딱 1시간쯤 전에 나는 반 아무개라는 후배평론가에게서 전화 한통을 받았다. 지금 구속된 저자와 발행인의 석방을 촉구하는 문인들의 서명을 받고 있는데 이름을 넣어도 좋겠느냐는 문의였다. 나는 생각끝에 두가지 단서로 서명을 승인했다. 첫째는 석방촉구문안에 마 교수를 문학적으로 옹호하는 구절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고,둘째로는 어떤 일이 있어도 내 이름을 앞세우지 말라는 것이었다. 물론 그 평론가는 그 단서를 지키기로 떡먹듯이 약속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내게 그렇게 답변하고 돌아서자마자 나온듯한 9시 뉴스중의 하나는 내가 앞상서서 무슨 위원회를 구성해 그들의 석방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어떤 경위를 거쳐 그렇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때부터 나는 밤새 구역질과 욕지기가 났고,아직도 그게 멎지않아 이제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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