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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회사 맞아? 맞네! 카드회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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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현대카드가 카드업계에서 강자는 아니다. 국민카드나 LG카드에 덩치에 밀리고 시장 점유율은 4위다. 2003년 8146억원(현대캐피탈 1773억원 포함)의 적자를 지난해 6215억원(현대캐피탈 3405억원 포함) 흑자로 돌려놓은 것도 마찬가지다. 극적인 반전을 따진다면 파산 직전에서 지난해 당기순익 1조원을 훌쩍 넘긴 LG카드가 오히려 앞선다. 그래도 카드업체 사장들은 " 현대카드가 제일 무섭다"고 털어놓는다."다른 카드업체 생각은 다 뻔한데 현대카드는 뭘 들고 나올지 도무지 예측할 수가 없어요. "(한 카드회사 대표)

서울 여의도 현대카드 본사에 들리면 이들의 두려움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사무실과 로비.회의실.직원 식당에서까지 새로운 디자인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곳곳에 직원들의 창의적 아이디어를 끌어내기 위한 독특한 개념의 디자인들로 가득차 있다. 현대카드 강점인 감성경영의 비밀을 엿보는 느낌이 든다.

◆"카드도 상품이다"=훤히 비치는 투명카드와 사이즈가 기존 신용카드 절반만 한 미니카드(2003년), 직사각형 모양을 탈피한 프리폼카드(2004년), 세계적인 산업 디자이너 카림 라시드가 내놓은 디자이너 카드(2005년)…. 다른 회사들이 카드시장에서 부가 서비스 얹어주기와 수수료 인하의 출혈 경쟁에 골몰할 때 현대카드는 다른 길을 갔다. 정태영 대표는 "우리는 카드도 상품이라는 데 눈을 돌렸다"고 말했다.

당시까지 신용카드는 결제를 위한 마그네틱 선이 가장 중요했다. 신규카드 디자인에 들이는 비용은 기껏해야 20만원 정도였고 보잘 것 없는 값싼 프래스틱을 썼다. 반면 현대카드는 최첨단 카드 디자인을 개발하고 고급 프래스틱 소재를 개발하는 데 최소 1억원씩을 투입했다. 카드 한 장이 소비자의 감성을 자극하는 강력한 수단이라고 본 것이다. 현대카드는 산업디자인의 거장인 카림 라시드나 역대 가장 아름다운 화폐를 만든 스위스 화폐디자인팀 출신의 레옹 스톡에게까지 카드 디자인을 맡기고 있다.

다른 혜택은 별 차이가 나지 않는데도'갖고 싶은 카드'로 입소문이 나면서 현대카드는 젊은층 공략에 성공했다.

◆카드 마케팅이 디자인과 만나다= 5일 점심시간 무렵 들린 현대카드 본사 로비. 고객에게'믿어달라'고 호소하기는커녕 '믿거나 말거나'(Believe it or not)라는 엉뚱한 광고 카피가 눈에 띈다. 너무 엄숙하고 화려해서 방문객을 기죽이게 만드는 다른 카드회사 로비와 달리 곳곳에 첨단 미술작품이 걸려있고 하루 종일 음악이 흐른다. 한쪽에는 팝아티스트 줄리앙 오피에의 거대한 LED설치작품이 서 있고 축구공만한 인공지능 스피커 '미우로' 두 대가 로비를 제멋대로 돌아다니며 음악을 쾅쾅 쏟아낸다.

현대카드도 다이너스 카드를 인수한 2001년엔 다른 카드사와 똑같았다. 변신은 2003년 정 대표가 취임하면서 시작됐다. 그는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면서 사옥 리모델링에도 착수했다. 놀이터처럼 자유롭고 안락한 새로운 디자인의 사무실은 이때 만들어졌다. 초기에는 "적자회사가 쓸 데 없는 데 돈을 쓴다.미쳤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일부는 현대카드의 실적호전을"현대차라는 든든한 배경에다 대대적인 광고를 통한 물량공세일 뿐"이라고 깎아내린다. 하지만 감각적인 디자인이 도입될수록 현대카드는 쑥쑥 커나갔다. 2003년 4.1%였던 현대카드의 신용판매 취급액 점유율은 지난해 13.2%로 껑충 뛰었다. 현대카드의 휴면카드 비율은 지난해 9월 현재 20%대 초반으로 업계에서 가장 낮고, 신규 가입 신청자에 대한 발급 거절율도 경쟁사보다 훨씬 낮은 50%대다.

디자인 경영은 직원들의 감성을 움직이고 고객을 대하는 태도도 서서히 변화시켰다. 다른 카드회사에서 옮겨온 한 영업직원은 "예전 직장에선 돈만 벌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같은 돈을 벌어도 내 품위와 고객의 시선을 생각한다"며 "새로운 카드 재료를 선정할 때나 브로셔 하나를 만들어도 남과 다르게 만들려고 노력하게 된다"고 말했다.

◆디자인은 창조적 인간도 키워낸다='디자인은 꾸미는 것이고 괜히 돈만 들어가는 장식'이라는 관념이 뿌리깊다. 그러나 현대카드는 디자인 경영이 비용을 줄이고 회사의 생산성을 올린다고 본다. 현대카드는 사장실이나 직원들 업무 공간이 일관된 디자인으로 설계돼 있다. 처음에는 돈이 많이 들지만 나중에 고칠 때는 훨씬 싸게 먹힌다.

정 대표는 "재래시장 같은 환경에서 일하면서 업무에선 창조적인 감성마케팅을 하라고 요구하는 건 무리"라며 "쾌적한 환경에서 일을 해야 업무 효율성은 물론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끌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현대카드의 창조적 마케팅의 대표적인 사례로 '블랙카드'를 꼽았다. 블랙카드는 국내 최초의 VVIP카드다. 경쟁사들이 회원 확장에 마케팅 능력을 집중할 때 최고급 수준의 한정된 사람만 받아주는 역(逆) 마케팅으로 재미를 봤다.

현대카드는 직원들의 해외출장이 유난히 잦다. 그리고 출장기간도 길다. 다른 회사에서처럼 파리 2박3일, 뉴욕 3박4일 식의 짧은 출장은 이 회사에는 없다. 정 대표는 "뉴욕 가서 일만 마치고 돌아오는 행위는 직무유기"라고 말한다. 미술관도 돌아보고 매력적인 식당에서 밥도 먹고 와야 제대로 출장을 갔다온 것으로 인정한다. 이런 문화적 노출이 결국 개인의 역량과 이어진다고 보는 것이다.

안혜리 기자 <hyeree@joongang.co.kr>
사진=최승식 기자 <choiss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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