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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문화권 탐방|조상 얼 찾아「역사」를 되새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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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10월은 문화의 달. 이즈음 가족과 함께 역사기행을 겸한 테마여행을 한번 떠나보면 어떨까. 특히 5천년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로서는 아직도 곳곳에 잊혀지거나 버려진 문하유산이 많다. 소홀히 다뤄 어쩌면 영원치 사라져 버릴지도 모를 역사유산을 찾아보고 알아보는 가운데 조상의 얼을 되새기는 여행은 매우 의미 있고 즐거운 추억거리도 될 것이다
특히 최근 한중 수교와 함께 중국·일본 등과의 역사교류가 점증하는 가운에 부쩍 관심거리로 등장하고있는 기행 지는 한반도 서남쪽을 중심으로 기원전 1세기초에 태동하기 시작해 6백 60년까지 융성한 문화를 자랑했던 백제문화권 삼국시대 백제는 고구려·신라 등과의 한강유역쟁탈전에서 일찍이 전제왕권을 확립했고 중국 요서·일본 등지에도 진출, 국제적 역량을 과시했던 국가였다. 지금까지 나온 각종 백제사와 문헌들을 보면 백제는 북방계통의 선 주민들이 남하해 토착문화를 흡수하면서 성장했고 삼국 중에서 가장 먼저 국가를 태동시킨 나라였다.. 위례성 등 한성시대 후기부터 전제왕권체제가 자리잡기 시작한 백제는 공주 웅진시대를 거쳐 부여 사비시대를 열면서 온화한 날씨와 비옥한 토지를 바탕으로 풍요로운 역사와 문화생활을 구가했다. 또 다채로운 예술·종교·음식·복식문화를 창출했으며 중국 요서·일본 등과 교역하거나 진출해 상권을 형성하기도 했다.
백제는 맡기에 집권층이 해이해지면서 나당 연합세력에 의해 멸망되었으나 문화유산은 통일신라에 이어져 우리 고대문화형성에 밑거름이 되었으며 일본에도 전해져 고대일본사회에 크게 이바지했다.
◇공산성=백제가 문주왕 때(475년)위례성에서 옮겨와 성왕 16년(538년) 부여로 천도할 때까지 60여 년 동안 사용하던 천연요새인 산성, 지난 36년 사적 12로 지정된 이곳은 왕궁 터와 중군 영지·연지 등이 확인되고 있으며 2·6㎞의 산성, 북문인 공북루 등 문화재 9점이 남아있다
지난 80년대 초엔 공주대 조사단에 의해 토성이 발굴됐고 공산성이 내성과 가성으로 축조됐음이 확인됐다. 최근에도 목곽 저장고 등에서 각종 유물·유적들이 속속 출토되고 있다.
◇무령왕릉과 송산리 고분=지난 71년 백제 25대 무령왕릉이 도굴되지 않은 채 발굴돼 화제가 됐던 고분군. 출토된 유물은 금관 등 12점의 국보를 포함해 l백 8종 2천 9백 6점이나 된다. 무령왕릉 앞에는 발굴당시의 유물들을 모형으로 만든 전시관이 있고 왕릉에서 3㎞떨어진 시내 금성동에 국립공주박물관이 있다..
◇계룡산 갑사=백제 구이신 왕 원년(420년)에 고구려에서 온 아도화상이 창건했다고 하는 사찰. 무령왕 때·505년) 천불 전을 중창하고 위덕왕 때(556년) 혜명대사가 천불전·보광전·대광전 등을 중건했다. 삼국통일 후 문무왕 때(679년) 의상대사가 천 칸 이상을 중수하였다고 한다. 명산 계룡산에 터를 잡아 1천 5백년이상 명맥을 이어온 갑사에는 보물 257호와 보물 256호 당간지주가 남아있다
◇부소산성과 정림사지 5층 석탑=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에 있는 사적 58호 부소산성은 잃어버린 왕국「백제의 한과 얼이 진하게 스며있는 곳. 산성을 따라 나있는 2·2㎞구간의 소나무 숲길은 삼림욕장으로도 일품이며 백마강의 싱그런 바람은 여행객들의 흥취를 돋워준다
산성 정문에 들어서면 백제의 충신 성충·흥수·계백의 영정을 모신「삼층사」를 비롯해 군량미 창고「군창지」, 의자왕의 어수 였던 고란사 약수터 등 온통 문화재와 전설로 뒤덮여있다 인근에 읍내 나성인 반월성, 국보 5호 정림사지 5층 석탑, 일본정원의 원조 궁남지, 능산리 고분, 부여 박물관 등을 둘러 볼만하다.
◇무량사=부여군 외산면 만수리에 있는 아름다운 사찰. 무량사 5층 석탑(보물 185호 )과 석등·보물233호). 당간지주가 유명하다.. 지난 71년 무량사 5층 석탑 해체 복원당시 초층 탑신에서는 아미타여래좌상·지장보살관상 등 불상 4구와 다라니경 자단목·향가루가 발견됐고 5층 탑신에서는 사리 병이 나왔다. 일주문이 알려져 있고 조선조 초에 매월당 김시습이 은거했던 절이라 한다.
◇황산벌=백제명장 계백 장군과 5천 결사대가 나당 연합군과 일전을 벌인「황산벌 싸움」은 백제의 멸망을 결정한 대접전 이 격전의 현장은 충남 논산군 연산면 일대였다. 당시 황산벌은 옛 수도 부여의 마지막 방어선이었고 주변에는 대둔산·도솔산·국사봉·함박산등이 둘러서 있어 천혜의 요새를 이루고있다 인근 부적면 충곡리에는 계백 장군 묘소가 있고 영정을 모신 충곡서원도 남아있다.
◇개태사=충남 논산군 연산면 천호리에 있는 유서 깊은 절.
고려 태조 왕건(936년) 이후 백제 견훤과의 싸움에서 자신을 구하고 전사한 명장 신숭겸을 추모하는 뜻에서 창건했다. 왕건이 훈요십조를 통해「금강이남 차현 이남 사람의 정치참여를 제한」하는 계기가 됐다고 전한다.
보물 2백 19호인 삼존석 불상과 일제시대 경성박람회에 출품되기도 했던 충남도 지정 민속자료 대형 가마솥(직경 3m)이 경내에 남아있다.
【공주·부여·논산·익산=배유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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