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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맛집] 동양食과 서양食이 한 접시 속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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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면

겨울로 막 들어선 어느날 서울 강남의 한 레스토랑에서 맛본 '그린티 파스타'는 내 몸에 숨어있던 '끼'를 충동질하기 충분했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우선 시금치를 믹서기에 갈았다. 동시에 프라이팬에 버터를 두르고 전기밥통 안의 밥을 퍼서 볶기 시작했다. 하얀 쌀밥에 노란 버터색이 물들 즈음 금방 간 시금치물을 부었다. 소금으로 살짝 간을 한 다음 아스파라거스를 고명으로 얹어 내놨다. 그럴 듯한 조리사가 된 것 같은 포만감에 디지털 카메라를 꺼내 사진도 한장 찍었다.

요리나 조리에 대한 나의 숨은 끼를 자극한 곳은 압구정동 디자이너클럽 건너편에 위치한 '마켓오(02-548-5090)'란 레스토랑이다. 이 집의 메뉴판에는 세상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음식(남들은 퓨전이라고 말하는데 나는 굳이 그렇게 표현하고 싶지는 않다)이 대부분이다. 산마즙을 얹은 찬 메일국수에 폰즈 소스, 국물이 청진동 해장국을 방불케 하는 면요리, 레몬 고추장 소스로 비빈 국수처럼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음식 재료와 소스의 배합이 있다. 이따금 상상을 초월한 동양과 서양의 묘한 오버크로스 퍼포먼스를 식탁을 무대삼아 관람하기도 한다.

특히 이곳에선 요즘 먹거리의 최대 화두인 '유기농'만을 고집한다. 정말 유기농 재료만 쓰는지 확실히 알 순 없지만 음식점 이름에까지 오르가닉(Organic)의 'O'를 붙였으니 믿을 수밖에. 창조적 메뉴를, 더군다나 유기농 재료로 만든다니 회사에서 가까운 거리가 아니어도 몸에서 특별한 식사를 요구할 땐 발걸음을 재촉하지 않을 수 없는 곳이다.

즐겨 먹는 애피타이저 메뉴는 망고 카르파치오. 얇게 썬 망고 위에 서너가지 푸른 채소와 게살을 올리고 신기한 맛을 내는 소스를 뿌렸다. 달콤함이 숨죽은 아이스크림 맛과 흡사하다. 거기에 짙은 색 발사믹 소스를 지그재그 뿌려 새콤한 맛을 만들어 냈다. 주머니 사정으로 애피타이저를 건너뛸 땐 메인 디시와 함께 샐러드를 꼭 주문하는데, 햇빛에 말린 토마토와 루콜라가 들어있는 토마토 샐러드가 신선하고 감칠맛이 난다.

메인 디시는 '스캘럽 캘리포니아'를 주로 먹는다. 게살과 오이가 들어간 롤은 평범한 캘리포니아롤과 다를 바 없다. 그런데 그 위에 관자와 양송이를 양념해 구워 올렸다. 그리고 치즈와 발사믹 소스를 듬뿍 뿌려 환상적을 맛을 연출해냈다. 생각만 해도 얌전하던 혀가 입가의 군침을 살짝 훔치고 지나가는 메뉴다.

매운맛이 당기면 20여가지 면요리 중 홍면을 시킨다. 쉽게 설명하면 중국식 볶음짬뽕 같은데 국물이 걸쭉하고 무척 맵다. 단, 이 메뉴는 밝은 톤의 옷을 입었을 땐 삼가자. 흐늘한 면을 젓가락으로 건져올릴 때 국물이 튀기 쉽기 때문. 전반적으로 호기심이 많은 사람들에겐 실험적인 외식 장소로 제격이다. 그러나 만만치 않은 가격을 감수해야 한다. 애피타이저.샐러드.주먹밥과 롤.면요리가 1만원 이상이다. 두세명이 가도 1인당 2만원은 각오해야 한다. 음식값에 부가세 10%가 추가되는 것도 잊어서는 안된다.

이주희(제주신라호텔 서울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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