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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한수산이 본 이모저모(이웃사람 일본인:5)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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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섬나라 근성」이 낳은 철저한 내향성/뿌리깊이 박힌 안으로 향하는 문화/「스모」·「가부키」 등 자기 것에 대한 집착 점점 강해져
도쿄의 지하철 아카사카역에 내리면 구내에까지 불고기 냄새가 풍긴다. 부근에 들어선 한국음식점에서 뿜어내는 냄새가 지하철 구내에까지 스며들기 때문이다. 그만큼 한국술집과 불고기집이 성업을 이루는 이곳 아카사카의 일본 요정들에는 아직도 2백명 가량의 「게이샤(일본기생)」가 있어 성업중이다. 이 게이샤들이 1년에 한번 갖는 무용공연이 있다.
「아카사카 오도리」가 그것이다. 이 춤판을 보고 있자면 이거야 춤이 아니라 패션쇼가 아닌가 의아해진다.
옷이 화려해서만이 아니다. 춤의 동작이 그렇다. 춤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몸매를 보여주듯 움직이기 때문이다.
일본춤은 크게 마이(무),오도리(용),그리고 후리(진)로 나누어진다. 「마이」는 움직임이 거의 없는 유창한 몸짓이 특징이며,「가부키」에서 나온 「후리」는 어떤 사물을 흉내내는데서 시작한다. 그 가운데 가장 움직임이 많은 것이 「오도리」다. 여름철이면 길에 나와 모두들 추는 춤에 「봉오도리」가 있다. 어른·아이·남녀가 어울려 이 춤을 춘다. 손을 아래 위로 내뻗으면 거기에 맞추어 다리를 앞뒤로 움직이는 이 춤은 거의 체조에 가까운 그 율동의 단순성 때문에 누구나 쉽게 출 수 있는 춤이긴 하지만 이것도 춤인가 싶다. 마치 무슨 운동시합에서 단체로 응원하고 있는 것 같다.
움직임이 없는 춤,혹은 움직임을 극도로 절제한 춤. 일본무용의 특색이다.
어느 것을 보아도 일본춤에는 도약이 없다. 땅을 차고 오르려는 몸짓이 없다.
서양의 발레와 비교할 것도 없이,우리의 춤은 저 농악의 흥청거리는 몸놀림에서 궁중무용의 나부끼는 손짓까지 어느 것 하나 도약이 아니고 밖으로 향한 분출이 없는 춤이 없다. 흥이 나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는 한국인. 그리고 이어지는 동작이 덩실덩실… 어깨춤이다. 이것은 자기라고 하는 굴레에서의 해방이며 밖으로 향하는 자아의 분출인 것이다(한국인의 옷이 그렇듯이).
두나라 문화의 차이가 여기서 드러난다. 하나는 밖을 향한 춤이고 하나는 안을 향한 춤이다. 손의 움직임을 보아도 우리의 춤이 허공을 향해 내젓는 유연한 곡선을 기본으로 한다면 일본춤은 직선으로 내뻗는 손동작이 유난히 많고 그 가운데는 땅바닥을 향해 찌르듯 내뻗는 동작까지 있다. 한국의 춤이 어떤 울타리를 깨고 뛰어오르는,밖으로 분출시키는 것을 그 양식미로 한다면 일본의 그것은 안으로 향하는,자제하는 문화가 길러낸 몸짓이다. 「춤이란 움직이는 건축」이라고 말한 조각가 로댕의 말을 빌리자면 일본의 춤은 움직임이 없는 「서 있는 건축」이다.
섬과 반도라고 하는 지정학적 제약이 두 나라의 문화를 그렇게 규제해 온 것인지도 모른다. 섬에 갇혀 있는 사람이 갖는 그 안쪽 땅에 대한 집착이 그러한 동작을 낳은 것은 아닐까 하는 가정이 이루어진다면 반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대륙지향이 춤에서까지 도약과 선 큰 움직임을 만들어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대국주의,군사적 대국화와 경제적 지배를 우려하는 목소리들이 높다. 그러나 일본에 살며 느껴지는 것은 이러한 대국주의보다 오히려 일본인들이 최근 보여주는 「일본에로의 내향주의」같은 것이다.
경제적으로 커지면 커질수록 오히려 일본것에의 집착이 점점 더 강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먹고 살만해지니까 우리 것을 찾는다」는 시각을 훨씬 뛰어넘는 현상이다.
두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이제 일본에는 「서양이라고 하는 것」의 실체를 극복했다는 자신감이 있다. 일본적인 것을 쭈뼛거림 없이 「내놓고 즐겨도」좋지 않느냐 하는 자신감이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의심하게(?) 되는 것이 일본인 스스로가 말하곤 하는 「섬나라 근성」이다. 춤에서도 보여지듯,바다에 갇혀 있기 때문에 「밖으로 나가면 죽는다. 안으로 안으로 들어가자」 하는 섬사람 기질이다. 그것을 보여주는 이상 열기로 「일본의 원형」이 곳곳에서 뜨겁다. 「스모」(일본씨름)에 대한 열광적인 붐,전통연극 「가부키」에 몰리는 젊은이들의 행렬,게다가 사양산업으로 전락하여 거의 문을 닫아가던 「유카다」(목욕후에 입는 가운식의 옷)업계가 젊은 여자들의 폭발적 인기를 얻어 수요를 대지 못할 정도의 성업을 누리는 것이며… 지난해에는 국내여행이 일본인들 사이에 붐을 이루기도 했고.
세계의 여러나라들이 일본의 대국주의를 우려하는 것과는 달리 이 일본사회 안에 불고 있는 「내향성」을 좀더 눈여겨 보아야 하지 않나 싶다. 이 내향성이야말로 이본이 겉으로 내세우는 「국제사회에서의 공헌」을 외면하는 섬사람 기질이라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한국인이 춤사위처럼 뛰어오르고 밖으로 쏟아내는 것은 좋지만 발붙일 땅마저 잊어버리게 너무 붕 뜨지는(?) 말아야 한다면,일본은 내 땅만을 내려다 보는 눈을 들어 더 멀고 넓게 이웃나라들을 바라 보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는 교훈마저 떠오르는 것이 두나라의 춤을 바라보며 한 덧없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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