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전 시장, 피해자인가 관련자인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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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한나라당이 마침내 ‘검증’의 태풍 속으로 진입했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재산 논란이 먼저 터졌다. 여기에 듣기에도 생소한 BBK사건이 가세했다. 박근혜 전 대표 측 유승민 의원은 “BBK 사건은 다스(현대자동차 시트부품 납품회사)와 관계가 있다”며 “이 전 시장의 형과 처남 소유로 돼 있는 다스 문제에 대한 검증작업을 계속하다 보면 5000억원이나 8000억원이 나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BBK 사건이 다스를 매개로 해 ‘8000억 재산설’과도 잇닿아 있다는 주장이다. 도대체 BBK 사건은 무엇인가.

BBK 사건에 이 전 시장의 행적이 얽힌 것은 표면적으론 2000년 2월부터 20001년 4월까지다. 미국에서 귀국한 이 전 시장은 사이버 금융사업에 뛰어들었다. 사업 파트너는 30대 투자전문가인 김경준(오른쪽 작은 사진)씨였다. 두 사람은 함께 LK-eBank를 설립했다. 당시 BBK의 대표였던 김씨는 이 전 시장의 '지인(知人)'인 미모의 재미교포 여성 변호사 에리카 김(오른쪽 큰 사진)의 동생이다. BBK는 활발히 자금을 유치했다.

이 전 시장의 친형과 처남이 대주주인 다스도 2000년 3월부터 12월 사이 BBK가 운용하는 펀드에 190억원을 투자했다. 이 전 시장은 의욕적이었다. ‘EBK증권중개’ 란 증권사 설립을 추진했다.

문제는 2001년 3월 금감원이 BBK를 조사하면서 비롯됐다. BBK가 투자자에게 위ㆍ변조된 펀드운용 보고서를 전달한 혐의 등이 드러났고, 죄질이 무겁다고 판단한 금감원은 그해 4월 28일 BBK의 투자자문업 등록을 취소했다. 이 전 시장은 이에 앞서 EBK증권중개의 예비허가를 자진 철회하고 LK-eBank의 대표이사직을 사임하는 등 김씨와의 동업관계 청산에 들어갔다. 김씨와 BBK의 사업행태상 문제점을 파악했기 때문이라고 이 전 시장 측은 설명한다. 그러나 이걸로 끝이 아니었다.

미 교포신문 The Sunday Journal 제공

김씨는 BBK의 등록취소 하루 전 옵셔널벤처스코리아라는 코스닥기업 대표로 취임했다. 이 회사의 전신은 뉴비전벤처캐피탈(옛 광은창투)이었다. 이미 1월부터 외국법인(MAF 리미티드) 명의로 주식을 매집한 끝에 경영권을 인수한 것이다. 외국인이 사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 회사 주가는 급등했다. 김씨는 불과 8개월 뒤인 그해 12월 미국으로 도피했다. 이 과정에서 380여억원의 회사 자금을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있다. 회사와 소액투자자들은 막대한 피해를 당했다. 이 전 시장과 다스도 상당한 피해를 봤다.

다스는 BBK에 투자를 맡긴 190억원 중 140억원을 돌려받지 못했다. 이 전 시장은 LK-eBank 투자금 30억원을 떼였다. 김씨 도피 전 이 전 시장은 BBK에 돈을 맡긴 ㈜심텍으로부터 투자금을 돌려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고소까지 당했다. 이 전 시장은 다음해 1월 말 검찰로부터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현재 김씨는 미국 연방수사국(FBI)에 체포돼 한국 송환 재판을 받고 있다.

정리하면 이 전 시장은 의욕적으로 시작한 사이버금융사업에서 김씨와 얽히면서 큰 피해를 봤다. 그러나 박 전 대표 측 주장대로 이 전 시장이 BBK에 직접 연루돼 있었다면 사건의 실체가 달라질 수 있다. 중견기업인 다스가 거액을 투자했다가 떼이는 과정이 석연치 않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이것이 BBK 공방의 출발점이다.

이상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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