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억대 재산” 큰손/「광화문 곰」 그는 누구인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3면

◎하루 현금동원능력만 수백억/주식투자 실패 부도위기 몰려
「광화문 곰」 고성일씨(70)는 한국적인 증시상황이 만들어낸 대표적인 「큰손」으로 통한다. 서울 광화문 뒤쪽 세종빌딩에 세형상사라는 사무실을 차려놓고 회장으로 있으면서 10여명의 직원들을 시켜 여러 증권사에 퍼져 있는 주식계좌를 통해 주식투자를 하고 부동산을 관리토록 하는 「투자꾼」이다.
하루의 현금 동원능력이 수백억원대며 부동산을 합친 전체 재산은 수천억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증권통 큰손도 최근의 주가하락에는 맥을 추지 못했다.
증시 규모가 그전보다 훨씬 커졌는데도 고씨는 예전의 「실력」을 믿고 신용금고에서 돈을 빌려 주식시장에 쏟아부었다. 3년이 넘게 내림세가 계속되는 증시상황에서 결국 투자원금도 제대로 건지지 못하고 큰 손실을 본 것이다.
다급해진 고씨는 사채어음을 발행했는데 만기가 돼 돌아오는 어음을 제대로 막지 못해 부도 위기에 몰려있으며 아들 경훈씨(33·구속)는 이미 부도를 냈다.
고씨는 증권가에서 「신사답지 못한 큰손」으로 알려져 왔다.
이번에 그는 신용금고에서 한사람에게 해줄수 있는 대출한도가 5억원으로 제한돼 있자 이를 피하기 위해 사업자등록증을 위조,실제로 있지도 않은 유령회사 명의로 불법으로 돈을 빌렸다. 수서사건으로 세상이 떠들썩했던 지난해 2∼3월 한보철강 주식 80만주를 샀다 되팔면서 주가를 조작,1억원의 시세차익을 남겼다가 지난해 8월 증권감독원에 의해 적발돼 고발당하기도 했다. 고씨는 이때 본인과 아들·사위명의로 개설된 가명계좌를 이용,상한가로 매수주문을 내 일반 투자자들이 가담해 주가가 오르면 팔아치우는 시세조종수법을 썼다가 덜미를 잡혔다.
황해도 연백이 고향인 고씨는 해방직후 월남,서울 남대문시장 부근에서 수입염료상을 해 큰 돈을 만졌다. 78년 당시 큰 돈인 1백억원을 갖고 증시에 뛰어들었으며 주가가 급등한 건설주에 투자,오늘의 재산을 모았다. 80년초 공영토건·경남기업·진흥기업 등의 주식을 5백만주씩 사들여 막강한 자금력을 과시함으로써 「광화문 곰」이란 별명이 붙었다. 그는 또 88년 5월 서울 수유동 1만7천평 규모의 땅(시가 30억원 상당)을 통일연수원 부지로 기증하는 등 손이 컸다. 그의 재산은 대부분 부동산이며 서울 여의도·강남의 노른자위땅을 갖고 있다 주식투자하면서 팔았는데,지금도 광화문 등 시내 곳곳에 땅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는 일부 정계 등 실력자의 돈을 가져다 이익이 나면 철저히 돌려주고 손해가 나면 자기가 감수하는 등으로 투자를 대행해주었다는 소문도 있다.<양재찬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